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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도서기'(東道西器)의 한국특수교육 담론

평촌0505 2020. 3. 26. 11:42

 

 

 

1. 문제 제기: 왜 동도서기(東道西器)인가?

 

본래 ‘동도서기’(東道西器)는 구한말(19세기말) 개화사상의 전개과정에서 전통적인 동양사상을 뿌리(體)로 삼아 서양의 신식기술(用)을 받아들이자는 동양의 체용(體用)철학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 해서 중국에서는 우리의 ‘동도서기’와 같은 맥락에서 ‘중체서용’(中體西用)론을 제기했다. 하지만 서세동점(西勢東漸)이 세계사의 대세로 밀려오는 과정에서 ‘동도서기’는 ‘서도서기’(西道西器)로 자리를 내줄 수밖에 없는 한계를 드러냈다. 서양의 근대기술이란 것도 결국은 서양 근대정신의 산물이기에 따로 떼어서 볼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동도서기’의 문제는 논리적 문제라기보다 우리가 거듭 성찰해야 할 학문하는 태도(의식)를 중시하는 입장에서 논의될 것이다.

지금여기(21세기 한반도)에서 왜 다시 ‘동도서기’론을 제기하게 되는가? 우리는 일본의 ‘탈아입구’(脫亞入歐) 정책의 일차적 피해자로 악랄한 식민통치를 겪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더불어 광복을 맞았으나, 우리에게 분단은 아직도 그 끝이 보이질 않는다. 그럼에도 최근 반세기 동안 세계에서 그 유래를 찾아 볼 수 없는 ‘압축발전’을 비교적 성공적으로 추진해 왔다. 그러는 과정에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남한은 ‘서도서기’의 함정에 빠져들고 말았다. 뒤늦은 근대화의 과정에서 우리에게 ‘서도서기’의 종주국은 사실상 일본과 미국으로 압축되고 말았다. 그렇게 된 역사적 추이는 정치․경제적으로 동아시아권에 대한 신식민주의 정책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그 연유는 중층적이고 복잡하다.

필자가 지금에 와서 다시 ‘동도’(東道)를 복원하고자 함은 동아시아사상사의 기반 위에 한국사상을 정초(定礎)하고, 그 위에 한국특수교육 담론을 설정하기 위함이다. 동아시아문명권에서 우리는 유․불․선(儒․佛․仙/道)의 삼교(三敎)를 회통하는 사상 혹은 철학을 주체적으로 정립해 왔다. 그 회통의 주체적 반영은 고구려의 풍류도(風流道)와 조선조 말의 동학(東學)에 잘 드러나 있다. 이런 일련의 관점에 따라 본 연구에서는 다음 세 측면을 중점적으로 구명하고자 한다.

첫째, 우리에게 ‘동도’(東道)의 실체는 무엇인가?

둘째, 세계화를 매개로 한 ‘서도서기’(西道西器)에 맞서서 ‘동도서기’(東道西器) 나아가 ‘동도동기’(東道東器)로의 전환은 어떻게 가능한가?

셋째, 지구화시대에 부응한 화이부동(和而不同)의 한국특수교육 담론을 어떻게 형성․전개할 것인가?

끝으로, 마무리 글에서는 다시 ‘개벽’을 한국특수교육 담론 형성의 열쇠 말로 불러내어, 개인개벽을 체(體)로 한 특수교육 본질 복원을 제기하면서 사회개벽을 그 용(用)으로 삼고자 한다. 그리고 인도의 가야트리 스피박(G. Spivak)이 제기한 “서발턴은 말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응해서 특수교육과 장애학이 상생하는 길을 모색한다.

 

 

2. 우리에게 동도(東道)의 실체

 

우리에게 동도(東道)의 원류는 무교(巫敎) 혹은 문화적 습속으로서의 무속(巫俗)에서 찾을 수 있다. 최준식(2016)은 동아시아의 한․중․일에서 공통의 보편종교가 불교와 유교라면, 한국의 고유종교는 무교이고, 중국은 도교이고, 일본은 신도라 했다. 그는 무교의 “굿을 보지 않은 사람은 한국문화를 논하지 말라.”고 했다. 류동식(1975)은 『한국무교의 역사와 구조』에서 한국문화의 원류이자 지핵(地核)은 곧 ‘무교’라면서 이렇게 말한다.

 

한국문화의 지핵(地核)은 무교(巫敎)이다. 외래문명을 받아들이기 전 한국에는 억압 없이 무교가 노출되어 있던 때가 있었다. 이것이 바탕이 되어 외래문명을 받아들이고 문화지층을 형성하게 했다. 그러나 지각(地殼)은 차츰 무교를 억압하기 시작했다. 이조 5백년 사이의 유교(성리학)와 근대화의 물결을 몰고 온 서구문명이 오늘의 지표(地表)를 형성하자 무교에 대한 억압은 더욱 심하여졌다. 뜨거운 원초기의 무교와 접촉했던 불교는 그 열에 적지 아니 용해되어 상당부분이 동질화되기도 했다. 무교는 겹겹이 쌓이는 지각(地殼)의 봉쇄와 중압에 못 이기어 지하로 물러앉고 한국문화의 표면으로부터 사라져 가고 있다. 하지만 무교는 죽어 없어진 것이 아니다. 민중문화의 저변을 흐르면서 지핵(地核)을 형성하고 있다. 한국문화의 심층에서 여전히 그 에너지를 발휘하고 있다. …(중략) 무교라는 지핵은 깊숙이 억압되어 소멸되어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무교의 에너지는 여전히 민중 속에, 그리고 한국문화 속에 간직되어 작용해오고 있다. 그것은 그 강한 열량 때문이라 하겠다. 그러므로 이 지열(地熱)이 억압되는 대신에 창조적인 열량으로 변화되기만 한다면 우리는 여기에서 새로운 문명의 가능성을 꿈꿀 수 있을 것이다(류동식, 1975, pp.15-16).

 

지층으로 말하면, 무교는 한국문화의 지핵(地核)에 해당된다는 게다. 사상사적으로 보면, 한국사상의 종자 혹은 씨앗에 해당된다고 하겠다. 김태곤(1991)은 무속의 전승을 자체의 단순 전승, 종교습합적인 전승, 승화적 전승 등 세 갈레로 제시했다. 자체의 단순 전승으로는 무당의 굿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종교습합적인 대표적 예로는 불교문화에 잘 반영되어 있다. 위에서 류동식은 한국불교는 무교에 용해되어 상당부분이 동질화된 것으로 보았다. 절간에 산신당(山神堂)이 따로 있는 것은 곧 무교의 흔적이다.

마지막으로 그 승화적 전승의 대표로는 조선조말의 동학을 들 수 있다. 김태곤도 무교의 승화적 전승의 대표적 사례로 신라의 화랑도와 조선조 말기의 동학을 든다. 종교적 습합으로는 불교뿐만 아니라, 근대의 기독교까지도 무교와의 습합이 종교적 파급 촉진제가 되었다. 그리고 오늘날 이 무교(무속)의 창조적 열량으로 우리는 한류(韓流)의 세계화가 떠오르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무교의 전통과 더불어 자생적으로 형성된 고대 종교문화 속에는 우리의 원초적 영성 형태로 ‘풍류도’(風流道/徒)가 있었다. 류동식(1997)은 『풍류도와 한국의 종교사상』에서 우리의 원초적 영성의 소박한 형태로 외래종교를 수용하기 이전부터 고대 종교문화 속에 내재한 ‘풍류도’(風流道)에 주목한다. 그는 신라의 화랑제도를 통해 나타난 민족적 영성체로 ‘풍류도’를 말한다.

본래 ‘풍류’라는 말은 <삼국사기> 진흥왕조에 화랑제도 실시에 관한 기사 가운데서 최치원(崔致遠)이 쓴 「난랑비서문」(鸞郞碑序文)에서 나온 것으로,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나라에 현묘한 도(道)가 있으니, 이를 ‘풍류’(風流)라 한다. 이 교(敎)를 베푼 근원에 대하여는 <선사(仙史)>에 상세히 실려 있거니와, 실로 이는 삼교(三敎)를 아우른 것으로 모든 생명과 접촉하여 이들을 감화시킨다(國有玄妙之道 曰風流 說敎之源 備詳仙史 實乃包含三敎 接化群生. 『삼국사기』, 신라본기, 진흥왕).

 

신라시대에 있었던 현묘한 도(道)가 곧 ‘풍류도’인데, 그것은 유․불․도(선)의 삼교를 포함하고 있다는 게다. 이는 우리의 고유 신앙(종교적 사상)을 중국대륙으로부터 들어온 삼교사상과 연관해서 설명한 것으로 보인다. 말미의 ‘접화군생’(接化群生)한다는 것에서 풍류도의 실체적 특성이 잘 드러나고 있다. 상고시대 우리 조상들은 봄․가을에 하늘에 제사를 올리되 춤과 노래로 하였다. 이를 통해 하늘(하느님)과 하나 되는 강신체험을 하였고, 이것을 사상화한 것이 곧 ‘풍류도’이다(최종민, 1991).

풍류도는 하늘을 신처럼 섬기는 천신도(天神道)로, 내 안에 천신(天神)이 내재한 ‘나’가 풍류의 주체가 되는 것이다. 이른 바 ‘천인합일’(天人合一)이다. 이런 풍류도를 몸에 체현한 사람을 일컬어 ‘화랑’(花郞)이라 했다. 신라의 화랑도(花郞徒) 교육과정에는 도의로써 서로 몸을 닦고(相磨道義), 노래와 춤으로 서로 즐기며(相悅歌樂), 명산대천을 찾아 노니는 것(遊娛山水) 등을 포함하고 있다. 이것은 곧 풍류도의 체계적인 수행을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류동식(1997)은 풍류도의 기본 성격을 고유한 우리말로 ‘한․멋․삶’으로 집약했다. 여기 ‘한’에는 하나․크다․높다․바르다․하늘의 뜻이 있고, ‘멋’에는 흥과 율동, 조화와 자연스러움, 자유와 내실의 뜻이 있으며, 그리고 ‘삶’에는 생명이라는 생물학적 개념과 살림살이라는 사회적 개념이 동시에 포함되어 있다는 게다. 해서 풍류도는 우리에게 ‘한 멋진 삶’의 길을 열어 주고자 했다는 게다.

 

우리의 고대에서 ‘동도’(東道)의 실체로 ‘풍류도’를 거명할 수 있다면, 근대에 들어 ‘동도’의 실체는 ‘동학’(東學)에서 잘 드러나 있다. 동학은 안으로는 왕조말기의 혼란과 밖으로는 서세동점의 위기에 대응한 ‘동도’의 새로운 실체로 제기된 민족 종교(개벽종교)이자 철학이다. 도올 김용옥(2004)은 『도올심득 동경대전(東經大全)』서두에서 이렇게 말한다.

 

『동경대전』을 눈앞에 펼쳐놓으면 절로 옷깃을 여미게 된다. 우리 민족에게 진정 바이블이 있다면 오직 이 한 책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동경대전』은 한 종교 개창자의 케리그마가 아니다. 반만년 민족사의 고난의 수레바퀴가 이 한 서물에서 응집되어 신세계의 서광을 발휘하는 ‘개벽’의 심포니라 해야 할 것이다. 그 만큼 이 서물 속에는 수운이라는 한 인간의 너무도 꾸밈없는 소박한 삶의 모습과, 그 삶에 투영된 민중의 함성이 메아리치고 있다. 그것은 과거의 흑암에 묻혀버린 메아리가 아니라, 오늘 나 여기의 실존 속에 맥동치는 숨결이며 조선역사 엘랑비탈의 발출이라는데 새삼 우리의 가슴을 저미게 만드는 것이다(김용옥, 2004, pp.7-8).

 

그는 우리 민족에게 진정 바이블이 있다면 오직 이 한 책 『동경대전(東經大全)』을 꼽을 수 있다고 했다. 그만큼 수운 최제우(崔濟愚; 1824-1864)가 창도한 동학의 『동경대전』은 한국의 주체적(민족적) 종교와 사상을 대표하는 바이블 같은 경전이라는 게다.

김상봉(2014) 교수는 <우리철학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철학학술대회에서 한국철학의 좌표계 설정에서 그 원점은 ‘동학’이랬다. 철학은 새로운 세계를 설계하고 기투하는 것인데, 동학은 우리나라에서 새로운 세계관을 제시한 데서 그 시원이 된다는 게다. 또, 조성환(2018)은 우리니라 근대의 탄생을 논함에 있어 ‘개화에서 개벽으로’ 그 지향성을 설정해, 서구적 근대를 수용하는 것을 위주로 한 ‘개화’파를 넘어 자생적(토착적) 근대 개념을 강조한 동학의 ‘개벽’에 주목하고 있다.

 

수운은 『동경대전』의 <논학문(論學文)>에서 제자들이 도(道)는 하나로서 다르지 않다면, “선생님의 도(道)를 서학(西學)이라 불러도 되겠습니까?”라고 물으니 이렇게 답했다.

 

그렇지 않느니라. 나 또한 동쪽 나라 조선에서 태어나 동쪽에서 도를 받았으니 도는 비록 하늘의 도라 할지라도 학문으로 말하면 동학(東學)이라 해야 하느니라. 더욱이 땅은 동쪽과 서쪽이 나뉘어 있으니 어찌 서쪽을 동쪽이라 할 수 있으며 동쪽을 서쪽이라 할 수 있겠느냐. …(중략) 나의 도 역시 이곳 조선에서 받아 여기에서 펴고 있으니 서학이라 부르면 어찌 되겠느냐. (曰不然 吾亦 生於東 受於東 道雖天道 學則東學 況地分東西 西何謂東 東何謂西 …(中略) 吾道 受於斯布於斯 岩可謂以西名之者乎. 『東經大全』, <論學文>)

 

수운은 내가 동쪽 나라 조선에서 태어나 한울님으로부터 도(道)를 받았으니 비록 같은 하늘의 도라 할지라도 학문(사상)으로 말하면 ‘동학’이라 해야 한다고 했다. 이처럼 수운은 ‘서학’에 대응해서 ‘동학’을 창도했음을 천명하고 있다. 그리고 동학의 가르침은 한울님을 지극히 위하는 21자 주문(至氣今至願爲大降, 侍天主 造化定 永世不忘 萬事知)에 잘 집약되어 있다고 했다.

21자 강령의 글에서 지기(至氣)의 ‘至’는 지극한 것이요, ‘氣’는 비었으되 신령하고 창창해 우주 만물에 대해 간섭하지 않음이 없는 혼원(混元)한 하나의 기운(一氣)이라 했다. 금지원위대강(今至願爲大降)에서 ‘금지(今至)’는 이 도에 들어 한울님 기운과 접하게 되는 것을 안다는 뜻이요, ‘원위(願爲)’는 간청해 축원한다는 것이고, ‘대강(大降)’은 한울님 조화인 기화(氣化)를 내려 받기를 바라는 것이다. 위 21자 주문에서 앞의 8자(至氣今至願爲大降)는 도입부(강령주문)에 해당되고, 그 뒤의 13자(侍天主 造化定 永世不忘 萬事知)가 본문(본 주문)에 해당된다.

본문의 시천주(侍天主)에서 모심의 ‘시(侍)’란 안으로 신령함이 있고 밖으로 기화가 있어(內有神靈 外有氣化), 온 세상 사람들이 각각 자기본성으로부터 옮기지 못할 것임을 안다(一世之人 各知不移)는 것이다. 조화정(造化定)에서 ‘조화(造化)’는 억지로 하지 않아도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無爲而化)이며, ‘정(定)’은 하늘의 덕에 합일해 하늘같은 마음을 정한다는 게다. ‘영세불망’(永世不忘)은 사람의 한 평생 언제나 마음속에 간직해 잊지 않는다는 것이며, ‘만사지’(萬事知)는 모든 일에 하늘의 도를 알아서 그 지혜를 받아 깨친다는 것이다.

주문의 본문격인 “侍天主 造化定 永世不忘 萬事知”에서 그 열쇠 말은 ‘시․정․지’(侍․定․知), 즉 ‘모심-자리잡음-앎’으로 압축할 수 있다. 오문환(2005)은 여기 ‘모심-자리잡음-앎’을 사람과 한울님 사이의 관계양식으로 이해했다. 그 관계는 사람의 존재구조이자 사람이 따라야 할 도덕적 규범이다. 하여 모심(侍)은 내가 한울님을 주체적으로 모시는 적극적 활동이며, 자리 잡음(定)은 모심의 대상인 한울님의 조화가 내 안에 자리 잡음이며, 앎(知)은 그 결과로서 주객을 넘어서는 양자의 만남을 통한 깨침(초월)이라는 게다.

이어 오문환(2005)은 우주생명의 변화 중심에는 한울님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힌 것이 ‘시’(侍)와 ‘정’(定)이라면, 이 사실을 한시도 잊지 않고 밝은 지혜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지’(知)라고 했다. 하여 의암 선생은 13자 주문에서 ‘시천주 조화정’(侍天主 造化定)은 근본(體)이며, ‘영세불망 만사지’(永世不忘 萬事知)는 단련(用)이라 했다.

유철(2010)은 <동학의 ‘시천주’ 주문>에서 ‘시․정․지’(侍․定․知)의 관계를 “시천주하면 조화정하고, 조화정하면 만사지 한다.”는 논리적 순차(가정적 조건)의 관계로 말했다. 따라서 수운의 주문해석을 따라가다 보면, ‘시천주’를 통해서 ‘만사지’의 경지, 즉 ‘지극한 성인’에 도달하게 됨을 알 수 있다는 게다. 이러한 ‘만사지’의 경지는 신(상제)이 인간에게 내린 경지가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존재성을 개벽한 능동적 주체로서의 신인간의 열림(깨침)이다.

동학의 2대 교주인 해월 최시형(崔時亨; 1827-1898)은 ‘한울님’은 내 몸 안에 모셔져 있으며, 동시에 이 우주에 편만(遍滿)해 있기에 ‘한울님’을 ‘천지부모’(天地父母)라고 불렀다. 그는 사람이 곧 하늘(人是天)임에 사람 섬기기를 하늘처럼(事人如天)하랬다. 기독교 신학자인 김경제(1974)는「최수운의 신관(神觀)」에서 “동학의 한울님은 신이 초월적 공간에 존재한다고 믿어왔던 종래의 초월적 유일신(唯一神; monotheism) 신관과 신이 만물 속에 내재한다고 생각하고 있던 내재적 범신(汎神; pantheism)관을 동시에 극복한 것이다. 이러한 신관은 매우 초현대적인 것으로 ‘범재신관(汎在神觀; panentheism)이라고도 부른다.”고 했다.

최종성은 『동학의 테오프락시』(2009)에서 한국종교사의 흐름 속에서 동학은 ‘무속(무교)-불교-유교-서학(가톨릭)-동학-개신교’라는 시간궤적을 따라 한국의 종교문화에 중요한 파장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점차 한국종교문화의 심층에 자리 잡게 되었다고 평가한다. 그는 한국종교사의 흐름에서 ‘무속-불교’, ‘불교-유교’, 유교-서학‘, ’서학-동학‘, ’동학-개신교‘의 짝패는 한국종교사의 맥락 이해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동학의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는 데에도 중요한 단서가 된다고 본다. 동학은 ’서학-동학-개신교‘라는 틈바구니에서 단지 두 거물에 치인 게 아니라, 그 사이에서 동학이 우리에게 던져준 파장과 울림은 과연 무엇이었는가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상에서 우리의 역사 속에 면면히 이어져 온 ‘동도’의 실체를 ‘무교-풍류도-동학’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우리의 역사 속에 내재한 ‘동도’의 실체는 단지 우리에게 역사적 전통으로 선재(先在)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부단히 재구성하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체(體)로서 그 함의를 갖는다. 그것을 오늘의 현실에서 어떻게 재구성해 미래를 열어갈 것인가는 우리에게 주어진 용(用)의 과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최근에 와서 다시 ‘동도’의 실체를 드러내고자 ‘개벽종교’의 연장에서 ‘개벽학’의 등장과 더불어 『개벽파선언』(조성환, 이병한, 2019)이 제기된 것은 우리의 주목을 끌게 한다. 이들은 21세기 한반도에서 “흩어진 개벽파를 세력화하고, 투박한 개벽파를 세련화하며, 수줍은 개벽파를 세계화한다!”고 선언한다. 3.1 독립운동선언 100주년을 맞아 제2의 동학으로 다시 개벽의 세상(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열어가는 담대한 기운이 돋보인다.

 

3. 서도서기(西道西器)에서 동도서기(東道西器)․동도동기(東道東器)로의 전환

 

앞에서 우리의 역사 속에서 ‘동도’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무교-풍류도-동학’을 한 줄로 엮어 개관해 보았다. 하지만 우리는 뒤늦게 서구적 근대화를 압축적으로 추동해 오느라 너무 쉽게 우리가 축적해 온 과거를 잊어버리고, 우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서도서기’(西道西器)에 빨려들고 말았다. 함석헌 선생은 우리에게 광복은 한 밤의 도둑처럼 몰래 찾아왔다고 했다. 해서 우리는 광복을 맞이하긴 했지만, 여전히 친일파가 득세하는 가운데 미군정 3년을 거쳐 친미정권이 들어섰다. 그로부터 분단체제와 더불어 ‘친미’(親美)는 남한의 일관된 국책으로 굳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본래 ‘동도서기’(東道西器)라는 말은 중국에서 ‘중체서용’(中體西用)이라는 말의 쓰임과 함께 ‘서세동점’에 대응하는 초기의 대응논리로서, 적극적인 개방이나 개화에 대해 조심스런 자세를 반영한 것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그러나 문명사의 큰 흐름에서 볼 때, ‘서세동점’은 거역할 수 없는 대세로 입증된 시대상황에서 동아시아지식인들의 서양문물제도 수용과정에서 표출된 실사구시적인 주체적 태도로 이해하는 것이 온당하다. 이를테면, 구한말 개화사상을 가장 체계적으로 반영한 개화사상서인 『서유견문』(1895)에서 유길준은 ‘개화’의 등급을 논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고금의 형세를 참작하고 피차의 사정을 비교하여, 그 장점을 취하고 단점을 버리는 것이 개화하는 자의 큰 길이다. 개화하는 일을 주장하고 힘써 행하는 자는 개화의 주인이고, 개화하는 자를 부러워하여 배우기를 즐거워하고 가지기를 좋아하는 자는 개화의 손님이며, 개화하는 자를 두려워하고 미워하면서도 마지못하여 따르는 자는 개화의 노예다. 주인의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다면 손님의 자리라도 차지해야지 노예의 대열에 서서는 안 된다(허경진 옮김, 2004, p.396).

 

유길준에 의하면, ‘개화’라는 게 일방적으로 서양의 문물제도를 수용하고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 장점을 취하고 단점을 버리는 것이 개화하는 자의 큰 길”이랬다. 수용하되 주체적으로 가려 취하는 것을 강조하는 가운데 개화의 등급을 “개화의 주인, 개화의 손님, 개화의 노예”로 대별했다. 그는 개화의 유형을 실상개화와 허명개화로 구분하여, ‘실상개화’는 사물의 이치와 근본을 깊이 연구하고 고증해 그 나라의 처지와 시세에 합당케 하는 것이라 했고, ‘허명개화’는 사물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채로 덮어놓고 따르려는 것이랬다.

유길준은 진정한 개화란 “남의 장기를 취하는 것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훌륭하고 아름다운 것을 보전하는 데에도 있다.”(허경진 옮김, 2004, p.398)면서 주체적인 개화를 거듭 강조하고 있다. 그는 ‘개화의 죄인’을 이렇게 질타한다.

 

지나친 자는 아무런 분별도 없이 외국의 것이라면 모두 다 좋다고 생각하고, 자기 나라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심지어는 외국 모습을 칭찬하는 나머지 자기 나라를 업신여기는 폐단까지도 있다. 이것을 개화당(開化黨)이라고 하지만, 이들이 어찌 개화당이랴. 기실은 개화의 죄인이다(위의 책, p.399).

 

우리는 개화의 손님이 될지언정 자기도 모르게 ‘개화의 죄인’이 되는 것을 극히 경계해야 한다는 게다. 오늘의 수입학문 일변도 혹은 지식인의 지적인 식민 상태를 미리 예견하고 준엄하게 이 땅의 지식인들을 꾸짖는 것으로 들린다. 개화의 손님이 될망정 개화의 노예나 개화의 죄인은 결코 되지 말아야 할 터.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했거늘, 유길준은 개화하는 데에 있어서는 지나친 자의 폐해가 모자라는 자보다 더 심하다고 경고했다. 그는 개화라는 헛바람에 날려서 마음속에 주견도 없는 사람을 ‘개화의 병신’이라면서 몹시 나무랐다. 그는 ‘개화의 등급’을 이렇게 마무리한다.

 

우리나라의 고려청자는 천하에 유명한 것이고, 이충무공의 거북선도 철갑선 가운데는 천하에서 가장 먼저 만든 것이다. 교서관(校書館)의 금속활자도 세계에서 가장 먼저 만들어 낸 것이다. 만약 우리나라 사람들이 깊이 연구하고 또 연구하여 편리한 방법을 경영하였더라면, 이 시대에 이르러 천만가지 사물에 관한 세계 만국의 명예가 우리나라로 돌아왔을 것이다. 그러나 후배들이 앞 사람들의 옛 제도를 윤색치 못하였다(위의 책, p.402).

 

구텐베르그의 인쇄술은 서양에서 위대한 역사적 발전 계기를 마련했으나, 왜 우리는 그들보다 먼저 금속활자를 만들어 내고도 그리하지 못했는가? 우리에게는 새로운 발명이나 제도를 윤색(潤色)해서 법고창신(法古創新)하는 힘이 왜 체계적으로 이어져 내려오지 못했던가를 다면적으로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최근 50년간 경제적으로는 우리가 이룩한 ‘압축성장’이 역동적인 한국을 긍정적으로 표상 할 수 있을지 몰라도 문화적․학문적 측면에서의 주체적 생산성에서는 부정적 그림자가 짙게 깔려 있다. 다행히 대중음악과 영화예술 분야에서는 ‘한류’의 세계화가 최근 그 빛을 발휘하고 있으나, 학문분야(특히, 인문․사회학문)는 여전히 수입위주의 종속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학술단체협의회(2003)에서는 미국적 학문 패러다임 이식에 대한 비판적 성찰의 일환으로 『우리 학문 속의 미국』을 종합적으로 다룬 적이 있다. 이 책은 인문․사회학문 분야를 중심으로 지적 ‘식민화’에 대한 비판적 성찰로 엮어졌다. 당시 학술단체협의회의 상임공동대표였던 조희연은 이 책의 서문에서 이렇게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이 책은 우리 학문 속에 내재화 되어 있는 주류적 패러다임으로서의 미국적 학문패러다임에 대하여 각 분야별로 비판적 성찰을 시도하고 있다. 해방 이후 한국현대사를 지적․학문적 차원에서 보면, 미국적 세계관과 패러다임의 이식․지배화와 그에 동반하는 지적 ‘식민화’ 과정이었다고 볼 수 있다. 해방 이후 한국에 대해 미국은 ‘해방자’적 이미지를 가지고 나타난 지배적인 외재적 권력이었다. 그러나 반공주의를 배경으로 이러한 외재적 권력은 내재화된 친미적 세계관으로 혹은 주류적 패러다임으로 변모해 갔다. 우리가 ‘우리 안의 미국’을 성찰의 대상으로 삼는 것도 이 때문이다(학술단체협의회, 2003, p.3).

 

필자가 보기에 미국이 미친 학문적 패러다임의 이식과 지배화․종속화(식민화)과정에서 가장 심대한 영향을 받은 것은 사회학문(즉, 사회과학) 분야였고, 그것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이 책 제2부에서 <사회과학에서 미국식 패러다임의 수용과 특성>을 정치학, 경제학, 사회학, 교육학 분야에 걸쳐 다루고 있으나, 학문하기의 탈식민화 문제는 제4부 <철학의 탈식민화>에서 훨씬 심도 있게 다루어지고 있다.

김시천(2003)은 한국에서 전통 도가(道家)철학 담론을 중심으로 “철학 ‘만들기’에서 철학 ‘하기’까지”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 글에서 그는 철학 ‘만들기’와 철학 ‘하기’는 사실 별개의 문제가 아니라 같은 것을 어떻게 보느냐 하는 시각의 문제로 인식했다. 그에 의하면, 어쩌면 철학 ‘하기’의 가장 커다란 적은 우리 자신 안에 존재하는 ‘내면화된’ 오리엔탈리즘인지도 모른다고 했다. 일찍이 서양의 지식이 하나의 권력으로 동양에 이식되어 온 것으로 비판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이 우리자신도 모르게 스스로에게 ‘내면화된’ 지적 상황을 ‘철학의 탈식민화’ 과제로 제기하고 있다.

같은 책 <철학의 탈식민화>에서 연효숙(2003)은 “식민․탈식민 시대의 주체와 타자”라는 논문을 통해 ‘탈식민시대 나는 누구인가’를 문제 삼아 “나는 스스로 나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는가? 또 나는 주체적으로 학문을 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 질문은 곧 오늘 우리 특수교육학인들을 향한 질문이기도 하다. 서양인들에게 근대화과정은 곧 주체적 자기정립과정이라 해도 좋겠지만, “동양문화권의 지식인들은 서양의 타자라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자화상을 일방적으로 규정당하거나 주체의 자리를 탈취 당했기 때문에, 주체의 자리를 찾는 일이 시급해졌다.”(연효숙, 2003, p.348)는 게다. 연효숙은 이렇게 말한다.

 

동양은 후진적이고 무능하다고 생각하는 서구 오리엔탈리즘과 일본의 굴절된 오리엔탈리즘을 우리 스스로 내면화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서구 오리엔탈리즘이 이제는 ‘박제화된 오리엔탈리즘’이지만,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이를 흉내 내고 이에 감염되어 ‘복제 오리엔탈리즘’을 계속 우리 속에 내면화하고 생산해 내는 것은 아닌가. 다만 식민 현실에서는 일본이라는 거대 타자를 욕망하고 동일화하면서 그 모델을 내면화해 왔다면, 이제 탈식민화시대에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는 미국이라는 거대 타자로의 대상만 바뀌었을 뿐, 타자를 욕망하고 모방하면서 자기 내면화하려는 관성은 그대로 남아 있음직하다(연효숙, 2003, p.361).

 

우리나라 지식인들은 서구의 오리엔탈리즘과 일본으로부터 굴절된 오리엔탈리즘을 이중적으로 내면화한 상태에서 자기 정체성 혼란을 중층적으로 겪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당장 한국의 특수교육학계를 들추어 말하기에 앞서 나 자신의 경우를 솔직히 되짚어 보자. 나는 1960년대 중반에 학부에서 특수교육을 공부한 특수교육 1세대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1971년 가을에 나는 당시 이태영(李泰榮; 1929-1995)학장의 배려로 일본에서 약 1개월간 특수교육연수 기회를 가졌다. 당시만 해도 한국과 일본의 장애인 복지와 교육은 언필칭 하늘과 땅의 차이라고 할 정도였다.

나로서는 책상머리에서 공부하는 것보다 실제로 일본 특수교육을 직접 견문한 것이 훨씬 도움된 것이 사실이었다. 그로부터 70년대 초반까지는 일본의 특수교육 실천과 동향에 스스로 민감해지고자 했으나, 7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미국의 특수교육 전문도서와 저널에 의존하는 경향이 늘어났다. 그러던 차에 역시 이태영 학장께서 기회를 열어주어 나는 1978년 1학기에 약 6개월간 미국에서 특수교육을 연수할 수 있는 귀한 기회를 가졌다. 그 때 마침 미국특수교육계는 소위 모든 장애아동을 위한 공교육법인 공법(PL) 94-142가 통과되고, 그 실천을 앞둔 시점이어서 미국특수교육(학)계에서 조용한 혁명의 바람이 한창 화두가 되었다. 지금 생각하니 그 때 내가 참 타임잉(timing)을 잘 타고 미국에서 특수교육연수를 했던 것 같다.

그 후 나는 다시 1981-1982 학년도에 1년간 객원연구교수로 워싱턴DC에 있는Gallaudet 대학에서 농교육을 연구할 기회를 가졌다. 다녀와서 리오넬 에반스(L. Evans)의 『토털 커뮤니케이션: 구조와 전략』(1894)을 번역해서, 우리나라에 토털 커뮤니케이션(TC) 접근을 체계적으로 소개하고자했다. 이렇게 나 자신만 해도 특수교육학인으로서 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 중반까지는 일본 쪽에,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중반까지는 주로 미국의 특수교육학 담론에 경도되어 있었던 게 사실이다.

연효숙(2003)은 위의 논문에서 탈식민시대의 지식인으로서 ‘주체적인 담론의 자생적 생산을 위하여’ 우리가 취할 전략을 다음처럼 적시한다. 그 첫째는 지적인 식민화에 대한 무반성적인 오이디푸스화를 벗어나는 것이다. 자기 열등감을 ‘식민화된 무의식’ 속에 감추고 서양 제국주의 지식문화를 모방하기에 급급하고 심지어 이를 자기 내면화하는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게다. 그래서 비주체적 자아 깊숙이 숨어 있는 ‘식민화된 무의식’의 분열적 자기 정체성 혼란에서 깨어나자고 했다. 마침내 우리는 탈식민주의 담론의 제기 수준에만 머물지 말고, 스스로 탈식민 시대의 주체적 지식인으로서 학문담론을 생산해 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게다.

 

『우리 학문 속의 미국』(2003)에 이어 학문 주체화의 새로운 모색으로 조희연 등(2006)은 『우리 안의 보편성』을 기획집필 형식으로 펴냈다. 조희연은 ‘학문 주체화로 가는 항해 길에 배를 띄우며’라는 이 책의 서문에서 우리나라에서 1980년대에 들어서 ‘민족적․민중적 학문운동이 제기되면서 학문의 대외 종속성이 거론되었지만, 그 전략을 체계적으로 펼치지 못한 체로 90년대에 들어서는 ’탈근대 담론‘과 함께 ’오리엔탈리즘 비판 담론, ‘동아시아 담론’ 등이 번성했다는 게다. 이처럼 학문 종속성의 탈피가 당위적 과제로 대두되었음에도 그 가능성이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그 하나는 학문내용 차원의 문제로서 ‘주체적 학문’을 구체적으로 수행하는 ‘마음의 지도’가 제대로 잡혀 있지 않았다는 게다. 해서 서양 학문의 패권주의적․제국주의적 성격을 폭로하는 ‘오리엔탈리즘 비판 담론’조차도 서양 학문의 개념과 연구방법론으로 축조되어 있다는 게다. 다른 하나는 지식사회학 차원의 문제로서, 학문 및 학자의 재생산 구조에서 이미 뿌리 깊이 종속성이 내재해 있기 때문이라는 게다. 그는 이제 더 이상 ‘개탄’과 ‘폭로’에만 머물지 말고 구체적인 대안을 찾아야 할 때라면서, 학문내용에서 주체적 학문을 정립하는 과정은 다음의 두 단계를 거쳐야 한다고 했다.

 

처음은 서구적 인식 틀과 관점으로부터 ‘탈종속화’하는 단계이고, 다음은 독자적인 인식 틀을 정립하고 이를 구체적인 연구를 통해 구현하는 단계이다. 첫 번째 단계는 서구적 학문과 인식 틀의 상대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는 우리 학계에서도 상당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두 번째 단계는 서구에 종속된 자기정체성을 탈피하는 단계를 넘어 주체적 학문의 정립으로 나아가는 단계로서, 새로운 보편성을 갖는 지식의 생산자로의 전환을 달성하는 단계이다. 즉, 지식 소비자에서 생산자로, 지식 모방자에서 지식 창조자로의 전환을 달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목숨을 건 도약’을 필요로 하는 어려운 과제이자 우리 학계의 ‘병목지점’일 것이다.

첫 번째 단계가 우리의 경험과 현실, 역사와 사회에 대한 ‘탈식민(脫植民)적 인식’의 단계라 한다면, 두 번째 단계는 우리 현실에 대한 ‘주체적이고 보편적인 독해(讀解)’의 단계라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보편적 독해’라는 말은 흔히 우리 사회의 ‘특수성’으로 간주되는 것들 속에서 세계사적 보편성을 읽어낸다는 것을 의미한다(조희연, 2006, p.7)

 

그는 우리 현실의 특수성 속에서 세계사적 보편성을 읽어내는 태도와 지적 안목을 강조한다. ‘우리 안의 보편성’을 독해하는 것은 자신을 ‘보편적 전범’으로 삼는 서양학문의 성과를 인정하면서도 그 제한성과 특수성을 확인함으로써, ‘진정한 보편성’의 발견과 구성을 통해 우리 고유의 주체적 몫을 감당해내는 것이랬다. 지적 식민성을 극복하려면 ‘과잉보편화’된 서구 학술담론의 특수화가 필요함과 동시에, 그동안 ‘과잉특수화’된 한국적․비서구적 특수성의 보편화가 요구된다는 게다.

 

그러기 위해 이 땅의 지식인들은 ‘서도서기’(西道西器)의 학문담론에서 ‘동도서기’(東道西器)에로, 나아가 ‘동도동기’(東道東器)에 이르는 학문담론의 생성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어찌 감당해 낼 건가? 그것은 전적으로 이 땅의 지식인 각자의 ‘목을 건’ 몫이자 사명이다. 위에서 말한 ‘동도서기’와 ‘동도동기’의 개념적 차이는 무엇인가? 여기 ‘동도’(東道)는 넓게는 동아시아문명의 공동 유산인 유불도(儒佛道) 삼교를 기반으로 하면서 좁게는 한반도의 ‘동학’을 중심으로 한 사상의 체(體)이다. 그런 ‘동’의 사상과 철학을 ‘체’로 삼아 서양의 기술인 ‘서기’(西器)를 용(用)으로 활용하자는 게다. 본래 체용(體用)은 불이(不二)이지만, 개념적으로 구분해서 말하면 체(體)는 형이상의 세계이고, 용(用)은 형이하의 세계다. 그리고 ‘동도’는 심층에서 동서를 아우르는 것이므로 ‘동도서기’가 완숙해짐에 따라 ‘동도동기’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특수교육 학술담론에서 진정 ‘우리 안의 보편성’을 확립하기 위해서는‘서도서기’의 학술담론을 넘어서서 ‘동도서기’에서 ‘동도동기’로 이어지는 패러다임적 일대 전환이 일어나야 한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나라 특수교육학풍의 위상은 ‘서도서기’인가, ‘동도서기’인가? 객관적으로 볼 때, 우리나라 특수교육학계의 담론은 여전히 ‘서도서기’의 패러다임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필자가 보기에는 우리나라 특수교육(학) 담론은 외피적으로 ‘서기’(西器)의 결과물을 유행처럼 따라잡기에 급급한 나머지 그 ‘서기’를 지배하는 ‘서도’(西道)의 체(體)를 제대로 해독해내지 못하는 한계까지 지니고 있다. 이를테면, 우리나라 특수학교(급) 교육과정 운영에서 개별화교육프로그램(IEP)의 개발과 그 운영을 법제화하고 있지만, 그냥 기계적으로 교육과정 운영도구로 삼았을 뿐이고, 그것을 개발․운영해야 할 이론적 기초나 그 배경에 대해서는 거의 무관심하거나 백지상태였는지도 모른다.

이런 결과는 현장 교사들에게 일차적 책임이 있는 게 아니라, 교육과정 운영도구로 그것을 가져와 소개하고 적용토록 한 특수교육학인들에게 근본적인 책임이 있다. 그 책임은 특수학교(급)교육과정 개발에 참여한 나 자신에게도 면할 도리가 없다. 지금 생각해보니, IEP의 도입에 앞서 개인차이론과 개별화 학습원리, 그리고 공교육으로서 특수교육의 정립과 그에 따른 행정지원과 교사의 책무성(accountability) 문제 등을 한 묶음으로 엮어 다뤘어야 했다. 그 위에 특수교육의 실천을 지배하는 상위이론으로서 객관-미시적 질서를 중시하는 기능주의(functionalism) 패러다임의 한계가 무엇인가를 심층적으로 논의했어야 마땅하다.

그러는 가운데도 필자 나름으로 우리나라 특수교육(학) 담론에서 ‘동도’의 입론 혹은 그 착근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해 왔는가를 반추해 보고자 한다.(이렇게 함으로써 ‘동도서기’의 특수교육(학) 담론형성에 어떤 보탬을 주었는지 나 자신을 되짚어 볼 수 있을 게다.) 일찍이 조동일 교수는 『우리 학문의 길』(1993)에서 우리나라의 학술담론이 수입학 위주에서 한국화를 위한 자립학으로, 다시 한국학을 세계화하는 창조학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실제로 그는 지방학의 특수성에 기반 한 한국학을 세계 속의 보편성으로 끌어올리는 창조학의 길을 열기위해 2004년에서 2009년에 이르는 5년 동안 계명대 석좌교수로 강의한 내용을 학기별로 정리해 『세계․지방화시대의 한국학』10권을 시리즈로 출판했다. 그는 문․사․철(文․史․哲)을 아우르는 인문학을 중심으로 <우리 안의 보편성>을 정립하는 일에 모범을 보여주고자 했다. 필자는 사회학문(사회과학)으로서 특수교육학을 공부하는 학인으로서 조동일의 학문하는 방법과 태도에 공감을 얻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의 저서는 거의 빠트리지 않고 탐독하고 있다.

나는 우리나라 특수교육학의 학문적 성격을 어떻게 정립할 것인가를 나름 고민해 오던 중에 <특수교육학의 학문적 성격 정립과 그 과제>(1998)를 발표했다. 이 논문에서 나는 사회학문의 이론적 패러다임에 상응해 특수교육학의 위상을 탄력적(개방적)으로 정립하는 길을 제기하면서, 우리나라 특수교육학계에서 한국의 역사성과 현실성에서 우러나온(구성되는) 이론(grounded theory)을 생성해 내야 한다고 했다.

여기서 사회학문의 이론적 패러다임에 탄력적으로 대응한다는 것은 객관-미시 질서적인 기능주의에 지나치게(전적으로) 매몰되지 말고 동시에 해석주의, 구조갈등주의, 그리고 진보적 휴머니즘에도 이론적 관심을 기울이자는 게다. 나 자신 개인적으로는 그간 해석주의와 진보적 휴머니즘에 더욱 관심을 갖고자 했다. 그리고 사회학문으로서 특수교육학은 실사구시적(實事求是的) 방법론에 천착하는 만큼 ‘힘 있는 이론’(담론의 권력화)일 수 있고, 이를 통해 한국특수교육의 특수성이 세계 특수교육의 보편성에 기여하는 길을 찾자고 했다.

이런 문제 제기에 입각한 실천적 작업으로 나는 마음먹고『대구특수교육사』(2007)를 기필했다. 말하자면 대구특수교육의 ‘특수성’을 세계 특수교육의 ‘보편성’에 의미연관 지우자는 작업의 일환이었다. 이어 정년을 앞두고 우리나라 특수교육(학)의 정체성과 그 지적인 담론형성을 위한 종합적인 정리로 『한국특수교육론』(2011)을 냈다. 이 책에서 한국특수교육론 정체성 논쟁과 그 학사적(學史的) 논의를 정리하고, 장애학과 한국특수교육의 재구조화를 논의하고, 불교와 성리학의 한국 특수교육론적 함의를 논하고, 마지막으로 세계 속의 한국특수교육과 동아시아 모델을 모색한 것에서 나름의 학문적인 보람을 얻고자 했다.

정년이후 자유로움과 시간적 여유를 가지게 되면서 다시 생각해 보니, 내가 현직에서 마지막으로 정리한『한국특수교육론』(2011)은 아무래도 총괄적인 논의 수준에 머문 감이 없지 않아 아쉬움을 느꼈다. 그런 중에 한국특수교육 담론 생성을 밑받침하는 뿌리로서의 ‘체’(體)를 정립하는 일에 한층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말하자면 한국학의 이론적 기초 위에 한국특수교육 담론을 축조해 보고 싶었다고 할까.

이런 취지에서 『유학․불학․프로테스탄티즘의 한국특수교육론』(김병하, 2013)을 펴냈다. 이 책에 대해 홍순명 선생(풀무농업기술학교 교장 및 이사장 역임)께서는 서평을 겸해 “김 교수는 한국의 지배적 종교로 유교, 불교, 개신교를 들고 역사적으로 한국은 외국의 종교전쟁 같은 극단적인 대립 없이 평화공존을 하였으며, 우리나라의 풍류도나 근대의 동학과 같이 다른 종교와 심층적적으로 서로 회통(會通)해온 기조를 사상사적 특징으로 파악하였다.”고 했다. 책의 서문에서 나는 이렇게 썼다.

 

지금은 ‘다중근대성’(multi-modernity)의 시대다. 즉 유럽의 근대성, 북미의 근대성, 동아시아의 근대성이 공존하는 시대다. 우리는 ‘동아시아문명론’의 기반 위에서 한국특수교육 담론을 (주체적으로) 생성해 내야한다. 그래야 세계 속의 한국특수교육론 정체성이 분명히 드러난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저자는 유학-불학-프로테스탄티즘을 가로지르는 ‘회통’의 한국특수교육론을 정립하는 데에 관심이 모아진다(김병하, 2013, 서문 중에서).

 

이처럼 한국특수교육 담론 생성의 뿌리(體) 찾기에 나름 집중하다 보니, 자연히 우리나라 근대의 동학(東學)사상에 경도되기에 이르렀다. 정년 후 2014년부터 <지식과 세상 사회적협동조합>에 참여한 게 인연이 되어 동양고전 읽기를 하던 중, 2018년 가을에 동학의 『동경대전(東經大全)』을 원문중심으로 읽고 토의할 기회를 가졌다. 이 때 『동경대전』을 수차례 정독하고 해석해 본 것이 내가 동학사상을 체계적으로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러던 중 김용욱 교수(당시 한국특수교육문제연구소 소장)의 정년 기념 겸 연구소 동계학술대회(2018)에서 <‘개벽’의 한국특수교육론 정립>을 발표하고, 『특수교육저널: 이론과 실천』(2019)에 게재하였다. 최근 우리나라의 자생적․토착적 근대담론으로 ‘개벽학’에 대한 관심이 활발히 제고 있거니와, 필자는 한국특수교육 담론 내용의 열쇠말로 ‘개벽’의 특수교육론을 제기했다.

이 논문은 한국 특수교육담론에서 지식 생태계의 복원으로서 동학의 가르침이 주는 시사점을 세 측면에서 찾아보고자 했다. 그 하나는 “무궁한 이 울 속에 무궁한 나”(용담유사)로 존재하는 우리 모두에게는 자신의 몸속에 한울님이 내재해 있으므로, 교육가능성의 보편성은 장애가 아무리 심할지라도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고 했다. 둘째는 사람이 곧 하늘임(人是天)에 사람 섬기기를 하늘처럼 하는(事人如天) 그곳에 특수교육이 반석처럼 자리 잡게 하고, 마지막으로 수심정기(守心正氣)로 특수교육실천을 정립해 불연(不然)이 기연(其然)으로 통하게 하자고 했다.

이어 내친김에 동아시아철학에 기반 해서 한국특수교육철학을 정립함으로써, 세계특수교육 담론의 보편성에 의미연관 되게 하고자 <한국 특수교육철학의 정립: 희망과 존엄의 교육>(김병하, 2019)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은 동아시아의 종교-철학-교육을 접합한 유학의 『중용』, 불학의 『대승기신론』, 그리고 동학의 『동경대전』에 특별히 주목하여 한국특수교육의 사상적․철학적 담론 생성 길을 닦아 열고자 기필되었다. 이런 나의 의도가 후학들에게 어떻게 전달될 수 있을까 궁금하던 차에 민천식 교수가 기회를 만들어 주어 대구교대 대학원 학생들에게 한 차례 특강을 했다. 절호의 기회에 나로서는 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설명하고자 노력했으나, 어느 정도 전달되었는지 모르겠다.

성철 스님은 밥 먹는 이야기 아무리 해봤자 허기를 면치 못한다고 했다. 문제는 밥을 지어서 떠먹어야 배고픔을 면할 수 있다. 탈식민 시대에 걸 맞는 주체적 지식인으로 살기 위해서는 <우리 안의 보편성>을 찾아 자기 나름의 지적 담론을 생성해 내야한다. 그 길을 닦는 데에 내 나름 생성해 온 지적인 여정을 개관해 보았다. 이 땅의 특수교육학인들이 각자 자신의 색깔로 벽돌을 보탬으로써, ‘동도서기’ 나아가 ‘동도동기’의 한국특수교육 담론을 형성․구축하는 데에 기여하기를 고대한다.

 

4. 화이부동(和而不同)의 한국특수교육론

 

본래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는 말은 『논어』에서 소인과 군자를 구분해서 소인은 패거리 짓기를 좋아하지만, 군자는 다른 사람들과 두루 화합(和)하지만 서로 다름(不同)을 존중한다는 것에서 나온 말이다. 세계화의 시대에 두루 소통하는 ‘화’(和)가 퍽 중요하지만, 동시에 세계화의 무대에 그냥 편승하는 손님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주인이기 위해서는 ‘다름’(不同)을 유지하는 독자적 개성(주체성) 역시 긴요하다. 조동일은 『동아시아문명론』(2010)에서 ‘동아시아문명의 재인식’을 강조하는 의미에서 이렇게 말한다.

 

공자(孔子)는 노(魯)나라 사람인데, 5백년 뒤에 중국 사람이 되고, 다시 5백년 뒤에 동아시아 사람이 되었다. 이제는 공자가 세계인이 되도록 동아시아 어디서나 함께 노력해야 할 때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주장이 있고, 공자를 중국인으로 되돌리려고 한다. 중국에서는 공자가 중국인이라고 강조해서 말한다. 그렇다면 세계인은 누구인가? 유럽인만 세계인이어야 하는가?

공자는 소크라테스와 견줄 수 있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사람이었는데, 그리스인이 되고, 유럽인이 되었다가 이제 세계인이 되었다. 동아시아에서는 세계인 후보를 지나치게 엄선해 예선에 다 떨어트리고서, 동아시아인은 없고 각국인만 있다고 한다. 동아시아인을 거치지 않고 세계인이 될 수는 없다(조동일, 2010, p.15).

 

공자와 소크라테스는 동시대의 사람으로 함께 세계 4성(四聖; 즉, 공자, 소크라테스, 석가, 예수) 반열에 들지만, 어째서 소크라테스는 세계인이 되었는데, 공자는 동아시아인에 머물고 있는가? 유럽인만 세계인이어야 하는가? 부정적 오리엔탈리즘과 긍정적 옥시덴탈리즘이 극명하게 대비되는 지점이다. 조동일은 동아시아인을 거치지 않고는 세계인이 될 수 없다면서 세계 속의 동아시아문명 공동체를 강조한다.

그는 <동아시아문명론>에서 동아시아 각국의 장기인 과감한 설계(한국), 정밀한 고증(일본), 다양한 문화체험(중국), 그리고 세계사를 바꾼 충격(월남)까지 보태면 빠진 것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각각의 장점은 아주 이질적이어서 상극의 관계를 가진다. 그럼에도 상극이 상생으로 이어지게 해야 한다는 게다. 이 책의 말미에서 조동일은 이렇게 말한다.

 

동아시아학문을 이룩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동아시아는 정치나 경제 통합에 상당한 난관이 있으므로 문화를 앞세우고 그 중심을 이루는 학문 통합을 위해 먼저 노력해야 한다. 유럽문명권 학문의 지배에서 벗어나 자립하는 과업을 동아시아 각국의 개별적인 역량으로는 성취하기 어려우므로 협동해야 한다.

동아시아학문은 그 정도에 그치지 않고 한층 적극적인 사명을 달성하고자 한다. 유럽문명권이 선도한 근대학문의 한계를 극복하고 다음 시대 학문을 이룩하는 데 동아시아가 앞서서 다른 문명권의 분발을 촉구하는 것이 마땅하다. 국가끼리의 쟁패를 청산하고 보편적인 학문을 위해 하나가 되는 새로운 학문 모범을 보여 근대 다음 시대를 설계하는 지침이 되게 해야 한다(조동일, 2010, p.392).

 

세계의 보편성에 보탬을 주는 동아시아학문의 정립을 위해서는 ‘학문’을 매개로 동아시아 나라 간의 대등한 화합이 긴요하다. 아닌 게 아니라 조동일은 『동아시아문명론』을 펴 낸지 꼭 10년이 지나 동아시아문명의 심층을 공유하기 위해서는 이론과 실천 양면에서 협동과 화합이 자산이라면서, 최근 저술로 『대등한 화합』(조동일, 2020)이라는 책을 냈다. 학문세계에서 만이라도 동아시아문명의 심층을 공유하면서 동시에 세계문명의 보편성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이 이론과 실천 두 측면에서 구현되어 가야한다.

조동일 교수가 말한 우리나라의 장점인 대담한 발상과 거창한 가설 세우기를 좋아하는 ‘과감한 설계’가 힘을 받게 하기 위해서는 일본의 정밀한 고증능력, 중국의 다양한 문화체험, 월남의 세계적 충격을 긍정적으로 수용하고 소통할 필요가 있다. 서로가 대등한 관계에서 학문적 소통을 활성화 할 때, 동아시아 학술 담론이 마침내 구미의 학술담론과 대등한 경쟁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화이부동’의 한국특수교육 담론을 형성․전개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필자는 『한국특수교육론』(김병하, 2011) 마지막 장(8장) <세계 속의 한국특수교육과 동아시아 모델>에서 생산적 학술담론으로 ‘한국특수교육론’을 정립하기 위한 방법론적 과제로 세 가지를 들었다. 그 내용을 발췌해 소개한다.

첫째는 ‘실사구시’(實事求是)의 한국특수교육 담론 생성이다. ‘실사구시론’은 조선조 후기 실학자들의 개혁방법론으로, 개혁을 하되 조선의 역사적 현실에 맞게 방법론을 강구하자는 입장이다. 우리나라에서 ‘실사구시’의 개혁 전통은 조선후기의 이용후생 학파에서 발단하여 19세기 말에 서양문명 수용론을 기조로 한 위로부터의 개화파로 이어졌으나, 역사적으로 실패하고 말았다.

이에 밑으로부터의 자생적인 구시폐(救時弊)의 종교적(영성적)․사상적 ‘실사구시’로 제기된 동학의 다시 ‘개벽’(開闢)에 주목하게 된다. ‘개벽’은 세상을 새로 여는 개혁으로 ‘동도서기’를 내세운 자생적 ‘실사구시’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필자가 한국특수교육 담론 형성의 한 대안으로 <개벽의 한국특수교육론 정립>(김병하, 2019)을 제기한 의도가 여기에 있다.

둘째는 이 논문에서 문제 삼은 ‘화이부동’(和而不同)의 한국특수교육 담론을 생성하자는 게다. 여기서 ‘화이부동’의 방법론은 두 차원에서 제기된다. 그 하나는 동아시아문명 차원의 ‘대등한 화합’과 소통으로서의 ‘화이부동’이다. 다른 하나는 세계의 보편성에 한국의 특수성이 연관되게 하는 것으로서의 ‘화이부동’이다. 필자는 『한국특수교육론』(2011)에서 ‘화이부동’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화이부동’은 세계화 시대에 한국의 생존전략이자 한국특수교육론의 정체성 정립 과제이다. 원효의 화쟁(和諍)과 회통(會通)론이나 조동일의 생극(生克)론이 오늘의 한국특수교육학인들에게도 재현되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세계 특수교육 보편성과 한국 특수교육 특수성이 소통되고 상생하는 길을 열어 가야한다(김병하, 2011, pp.289-290).

 

필자는 <BK21 특수교육연구단>(1999-2006)을 이끌어 오면서 세계 속의 동아시아특수교육 정체성 정립에 사업단의 방향성을 설정하고, 이 사업의 후속으로 <한국특수교육문제연구소>를 설립(2006)했다. 그 후 2011년 정초에 <동아시아 특수교육 공동체 구축을 위한 한․중․일 특수교육의 역할과 과제>(2011.01.11)라는 주제로 창파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하였다. 이 학술대회에서 일본의 나카무라(中村) 교수, 중국의 쥬우 지아챙(許家成) 교수가, 한국에서는 필자가 발표를 맡아 동아시아에서 통합교육 실천경험과 그 과제에 대해 발표하고 토론했다.

당시에 일본은 종래의 특수교육을 ‘특별지원교육’으로 틀을 바꾸어 통합교육시대에 대응코자 하였으나, 하나의 절충형식에 머무는 감이 있었다. 중국은 여전히 분리 특수교육의 확충에 무게를 두면서도 특수학교 증설과 일반학교 내의 통합교육을 동시발전 모형으로 삼아 ‘우선과 나중, 정(正)과 부(副)의 공동발전’이라는 상보적 병행을 적극 추진하고 있었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의 특수교육은 일본과 중국의 중간 지점 어디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즉, 외형․정책적으로는 통합교육을 지향하고 있으면서도 내면적 실천은 분리교육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그런 형국이라 할 것이다.

일본은 특수교육 개혁을 향한 정밀한 검증을 통해 ‘특별지원교육’ 체제를 도입하였으나, 특수교육계 내부의 전문성과 과감한 추진력의 부족으로 과도적 혼란을 겪고 있음이 사실이다. 그에 비해 중국은 특수교육 개혁에서 후발국가임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역사적 체험을 바탕으로 분리교육으로서의 특수학교 설립확대와 통합교육 교두보로서 특수학급 설치의 보급을 통한 ‘동시적’(압축적) 공동발전을 통해 중국식 저력을 발휘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 특수교육은 그 무늬는 통합교육 지향적이지만, 내면적 결절은 여전히 분리교육을 탈피하지 못하는 모순을 안고 있다. 이런 모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교육본질 복원으로서 특수교육 전문성을 정립해내야 한다. 되돌아봄이 도의 움직임(反者, 道之行)이다.

셋째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의 한국특수교육 담론을 생성하자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일찍이 ‘유불도’의 3교를 회통하는 가운데, 동학에 이르러서는 기독교의 충격까지 흡수함으로써, ‘온고지신’의 지혜를 잘 내축해 왔으나, 학문적 담론 형성에서는 ‘온고지신’의 지혜가 제대로 재현되지 못한 감이 없지 않았다. 필자는 ‘온고지신’의 한국특수교육론 정립에 대해 이런 문제제기를 했다.

 

한국특수교육은 본말이 전도되어 있다. 오늘의 한국특수교육은 기법으로서의 몸짓(用)에 현혹된 나머지 막상 그 뿌리가 되는 몸통(體)를 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원칙적으로 몸을 떠난 몸짓은 존재하지 않는다. 체용(體用)의 논리에서 ‘체’를 굳건히 유지하기 위해 특수교육은 교육본질을 복원해야 한다. 우리의 역사적 전통에 의하면, 교육을 이리 저리 함부로 바꿀 수 없는 원칙과 철학으로서 교육본질의 전통은 면면히 이어져 왔다. 그 본질의 전통은 불교와 유학(성리학)의 전통에 확연히 내축해 있다. …(중략) 우리는 교육본질 복원을 통해 21세기 한국특수교육론을 구축(재구조화)하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지혜를 발휘해야 할 때이다(김병하, 2011, p.291).

 

이상에서 한국특수교육 담론 생성의 방법원리로서 실사구시, 화이부동, 온고지신의 원리를 말했다. 이런 방법원리에 따라 그 내용을 채워가는 일은 한국특수교육학인 각자의 몫이다. 각자의 학적인 관심사에 따라 과감한 설계도를 가지고 추진해 가야한다. 그 설계도의 작성과 추진 과정에서 특히 다음 두 측면에 유의하기를 한 번 더 권고한다.

그 하나는 우리나라 특수교육 담론의 ‘특수성’이 세계 특수교육의 ‘보편성’에 의미연관 되게 하는 지적인 성찰이다. 우리나라 특수교육학풍은 알게 모르게 서구의 특수교육 담론은 ‘과잉 일반화’해 온 가운데, 우리의 역사와 현실 속에서 우러난 담론은 ‘과잉 특수화’해 버리는 그런 관행에 빠져들었는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에게 한국특수교육 담론 생성을 위해서는 ‘우리 안의 보편성’ 정립이 절실하다. 말하자면 우리 특수교육학인들에게 ‘문기’(文氣)로서의 한류(韓流)가 세계무대에 소통되게 해야 한다. 각자가 그렇게 하고자 나서야 한다.

다른 하나는 다양한 비교연구의 성과를 통해 일반이론을 도출해 내는 작업이다. 조동일 교수는 『세계․지방화시대의 한국학』7권(2008)에서 ‘일반이론의 정립’을 위한 한국학의 과제를 이렇게 적시한다.

 

근대를 극복하고 다음 시대를 이룩하기 위해 동아시아가 분발하자고 촉구하면서 필요한 이론을 제공하는 학문이 21세기 한국학이다. 한국학은 한국에서 시작하는 학문이고, 한국을 우선적으로 다루는 학문이다. 그러나 이제 혁신을 하고 비약을 이룩할 때가 되었다. 한국에 머무르지 않고 인류를 위해 봉사하는 세계학이어야 20세기까지와는 다른 21세기 한국학일 수 있다(조동일, 2008, p.17).

 

그는 한국학에서 일반이론의 창조를 위한 방법론으로 이론구성의 대상이 되는 사실과의 관계에서 (1) 특정 사실에서 추론된 이론(개별이론), (2) 여러 사실에서 타당성을 가진다고 검증된 이론(중간이론), (3) 모든 사실에 적용되는 포괄적인 이론(일반이론)으로 대별했다. 개별이론에서 중간이론을 거쳐 일반이론으로 이르는 길은 연구 경험을 축적하면서 일반화하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없다고 했다.

그는 최상의 일반이론을 만드는 것을 학자라면 누구나 목표로 삼아야 한다면서 이렇게 질타한다. “노력해 보지도 않고 포기하려면 학자 노릇을 그만두는 것이 마땅하다. 우리 학계의 수준이 낮다든가 여건이 미비하다든가하는 따위의 핑계를 들어 게으름을 합리화하지 말고, 조용히 물러나 소중한 자리를 후진에게 넘겨주어야 한다.”(조동일, 2008,p.115)고 나무란다.

한국특수교육 담론 생성에서 그 담론이 일반이론 정립에까지 이르게 하기 위해서는 한․중․일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공통의 중간이론을 기반으로 해서, 세계화의 보편성에 보탬을 주는 일반이론 수준으로 심화․확충하는 데까지 이르게 해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곧 ‘화이부동’의 방법원리다. 필자가 보기에 그 길은 교육본질의 복원으로서 특수교육을 정립하는 과정(process)에 내재한다.

 

 

5. 맺음: ‘개벽’의 한국특수교육 담론 제기

 

앞에서 우리에게 동도(東道)의 실체로 ‘동학’을 말했다. 1860년에 수운 최제우가 창도한 ‘동학’은 서학에 대응하여 다시 ‘개벽’(開闢)의 세상을 열고자 했다. 세상을 새로 여는 ‘개벽’은 개인개벽을 체(體)로 삼아 그런 개인이 몸담은 사회개벽을 그 용(用)으로 실현코자 했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은 보국안민의 기치아래 미쳐 개인개벽이 착근되기에 앞서 사회개벽을 서두르다 보니 결과적으로 실패하고 말았다.

필자는 21세기에 다른 백년을 맞아 다시 ‘개벽’을 불러내어, 한국특수교육 담론 생성의 씨앗(씨알) 혹은 기준으로 삼고자 한다. 우리 모두는 ‘무궁한 울 속에 무궁한 나’이기에 내 속에 한울님을 모신 존재이다. 해서 내 몸 속에는 한울님의 신령함이 내재해 있고, 밖으로는 모든 생명과 하나로 통하는 기화(氣化)의 기운이 있다. 따라서 모든 장애아동은 그들의 장애가 아무리 무거울지라도 인간존재로서의 교육가능성과 학습의 힘은 그들 모두에게 내재해 있다. 이런 불퇴전의 믿음 속에 ‘희망과 존엄의 교육’으로서 특수교육이 ‘교육 중의 교육’으로 실재하게 해야 한다. 동학의 가르침에 의하면, 사람이 곧 하늘임에 “사람 섬기기를 하늘처럼 하는”(事人如天) 그 곳에 특수교육의 프락시스(praxis)가 자리 잡게 해야 한다.

개인개벽의 체(體)로서 특수교육 실재가 입증되기 위해서는 교육실천 과정에서 장애아동 마다 자신의 학습 속도와 스타일에 따라 다시 개벽의 존재로서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고 일어서게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야트리 스피박(G. Spivak; 1942- )이 제기한 “서발턴(subaltern)은 말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우리나라 특수교육은 응답할 수 있어야 한다. 특수교육은 교육본질의 복원을 통해 장애아동이 스스로의 목소리(언어)로 말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스피박이 말하는 ‘서발턴’은 인도의 하류계층 여성으로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침묵의 집단을 지칭한다. 우리사회에서 장애인은 또 하나의 ‘서발턴’이다. 스피박은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라는 자체의 질문에서 부정적으로 답했다. 하지만 우리는 특수교육의 교육다움을 구현함으로써, 서발턴니티(subalternity)로서 장애아동일지라도 세상을 향해 자기 목소리로 발언할 수 있게 교육(교육력을 발휘)해야 한다. 장애아동은 침묵하는 관리대상이 아니다. 그들 목소리로 말하게 하는 것이 곧 특수교육의 존재이유다.

하지만 우리는 위의 질문에서 당연히 수반되는 “우리는 어떻게 들을 수 있을 것인가?”라는 근본적으로 열린 채 남아 있는 질문에 스스로 한없이 겸손해져야 한다. 특수교육은 교육본질의 복원을 통해 모든 장애아동이 자기 목소리(언어형식)로 말할 수 있게 해야 하지만, 동시에 혹은 먼저 모든 비장애인들은 장애인들의 말을 어떻게 들을 수 있는가를 역지사지(易地思之)로 고민하고 인내해야 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김도현은 『장애학의 도전』(2019)에서 커뮤니케이션 참여자들은 각기 자기 정체성에 뿌리내리기(rooting)와 다른 주체들과의 교류와 공감을 통해 옮기기(shifting)를 하는 ‘횡단의 정치’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 간에 하나의 ‘공동체’(共同體)를 넘어서는 ‘공동체’(共動體)되기를 말했다. 장애인의 ‘말할 수 있음’과 비장애인의 ‘들을 수 있음’이 교차되는 지점에서 특수교육과 장애학 담론은 서로 상생하는 길을 걷는다.

우리에게 ‘동도서기’의 실재로서 ‘개벽’의 특수교육 담론은 동아시아공동체 형성을 통해 세계특수교육의 보편성에 보탬을 주는 담론으로 능히 나아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 한국특수교육은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긍정적으로 응답할 수 있어야 한다. 동시에 비장애인들은 장애인들의 어눌한 발언일지라도 “우리는 어떻게 들을 수 있는가?”라는 열린 질문 앞에 한없이 겸손해지기를 배워야 한다. 말은 말하는 사람의 세계이자, 사람 그 자체다. 해서 우리 특수교육은 장애인이 자기 목소리로 말 할 수 있게 가르쳐 내야하고, 그리고 우리 모두는 그들(장애인)의 말을 겸허히 들어줄 수 있어야 한다. 그게 ‘개벽의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