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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녀 이삿짐을 챙기며

평촌0505 2024. 8. 26. 20:15

서울서 공부하는 손녀가 2학기부터는 아범과 같은 아파트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원룸보다는 환경이 좋을 것 같아 다행이다. 지금까지는 아범도 을지로에서 원룸을 얻어 직장(은행)에 다니면서 주말이면 목포 집에 다녀오곤 했다. 근데 다니던 직장에서 승진하면서 20평대 아파트까지 얻어준다니 좋은 일이다. 그러나 손녀 입장에서는 혼자 생활하는 게 자유롭고 아버지와 함께 생활하는 게 좀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그래도 아범이 딸에게 원룸 생활비를 지출하지 않는 대신 용돈을 좀 더 올려준다고 하니 거절할 명분이 없다.

 

손녀가 원룸을 비워줘야 하는 날에 친구들과 일본 북해도 쪽으로 여행을 갔다. 해서 부득이 우리 내외가 짐을 챙겨줘야 할 사정이 되었다. 본래 손녀는 우리 집에서 자라 서울로 대학을 갔다. 어쨌거나 손녀 일이라면 집사람이 챙기는 게 우리 집 관례가 되었다. 집사람이 큰 가방을 두 개나 챙겨서 내가 직접 운전해서 서울을 가야 했다. 나도 손녀 일이라면 거절 못하는 할아버지다.

 

아침 9시경 경산에서 출발해 서울 손녀 원룸이 있는 회기동에 도착하니 오후 1시경이 되었다. 근처 중화요리 식당에서 점심을 챙겨 먹고 바로 손녀 짐 챙기는 일에 들어갔다. 나는 집사람이 시키는 대로 보조역할을 했다. 생각보다 손녀 이삿짐 챙기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 그러잖아도 다리가 불편한 집사람은 꼼꼼히 짐을 챙겨 가방과 박스에 차곡차곡 넣는다. 나는 집사람이 시키는 대로 이곳저곳 물건들을 준비한 가방에 넣어 주었다.

 

오후 4시 반경에 아들이 부탁한 후배가 와서 우리가 챙겨 놓은 짐들을 보관 창고로 이송해 가기로 했다. 손녀가 아파트로 이사 가는 날은 98일이다. 그동안 손녀는 자기 아버지 원룸과 친구 원룸을 배회하면서 떠돌이 생활을 할 게다. 일을 마치고 나니 맥이 풀렸다. 다시 운전해서 대구로 내려갈 자신이 없었다. 아내가 아들에게 그간의 경과를 자상히 전했다. 아들이 우리 있는 데까지 왔다 가면 시간이 많이 소요되니, 내가 은행 본점에 가서 주차하고 함께 저녁을 먹고 아들 원룸에서 자고 가는 것으로 정리가 되었다.

 

가까운 카페에서 우선 우리 내외는 시원한 과일주스를 한잔하면서 피로를 풀기로 했다. 아닌 게 아니라 시원한 과일 주스를 한잔하고 나니 훨씬 좋았다. 나는 아내에게 잠자리도 불편한데 그냥 집으로 내려가자고 하니 아내도 그러자고 수긍한다. 지금까지 당일 대구서 서울까지 직접 운전하면서 돌아간 적이 없다. 항차 나이 80줄에는 엄두 내기조차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이참에 내 의지와 운전 능력(체력)을 가늠해 보고 싶었다. 맘먹기 나름이다. 딸은 제 어머니에게 그런 무리를 하지 말랬다.

 

물론 나이 들어 무리하지 않아야 하지만, 때로는 자율성을 발휘해야 자존감이 생긴다. 5시 반경에 경희대 근처에서 출발해 충주를 지나 괴산 휴게소에서 저녁을 먹었다. 가능하면 어둡기 전에 남은 길을 줄이기 위해 부지런히 달렸다. 왜관 휴게소에 잠시 들렸다가 집에 도착하니 밤 10시경이 되었다. 집에 도착해 샤워하고 이내 곤히 잠들었다.

 

나이 들수록 집이 좋다. 손녀 덕분에 모처럼 조부모로서 우리 노부부의 자존성을 실험했다. 그리고 내리사랑은 그 끝이 없다는 걸 다시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