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탄소 식민주의: 기후위기의 실체

평촌0505 2024. 9. 17. 18:07

갈수록 기후 문제가 심각하다. 기후변화에서 기후위기로 바뀌더니 최근에는 기후붕괴라는 말이 등장한다. 기후 문제가 변화-위기-붕괴로 이어지고 있다. 그만큼 기후재앙이 체감되고 있다는 의미다. 그래도 잘 사는 나라의 상류계층일수록 태평이다. 왜 그런가? 그들의 삶에서 기후 문제는 전혀 위기로 체감되지 않는다. 추우면 따뜻한 난방이, 더우면 시원한 에어컨이 작동되기 때문이다. Laurie ParsonsCarbon Colonialism(2023)에서는 기후붕괴를 수출하는 부유한 국가들의 실체를 잘 드러내고 있다.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 재앙의 지리학(2024, 추선영 옮김)으로 번역되었다.

 

자본주의는 대량생산-대량유통-대량소비-대량쓰레기 배출의 강고한 연결고리로 유지·강화된다. 세계화 시대에 글로벌 생산 네트워크는 교묘하게 기후붕괴의 현장을 감춘다. 글로벌 공급망은 생산 비용은 낮추고 효율성을 높이지만 공급망의 실체를 희미하게 만든다. 저자는 현재의 기후변화 대응은 선진국이 탄소 배출을 가난한 나라의 빈곤 계급에 체계적으로 외주화하는 시스템이라는 것을 거듭 강조한다. 기후변화는 단지 숫자가 아니다. 선진국과 후진국, 부자와 빈자의 삶이 얽힌 복잡한 현상이다.

 

우리는 기후변화에 따른 느린 재앙의 시대에 살고 있다. 책에는 낙관적 기술주의나 종말론적 공포에 안주하지 않으면서, 선진국과 거대 기업이 그들이 유발한 기후변화 효과(결과)를 가난한 나라로 떠넘겨 사회경제적 재난을 어떻게 증폭시키는지를 심층적으로 분석한다. 남반구에서 자원을 추출하고 거기에 쓰레기와 탄소를 끊임없이 투기하는 탄소 식민주의의 불평등 구조가 지속되는 한 기후재앙은 증대한다. 그리고 그 피해와 위험은 남반구의 가난한 민중들에게 일방적으로 전가된다. 이게 글로벌 생산-공급 네트워크의 실체다.

 

저자는 기후변화 영향에 관한 한 돈이 중요하댔다. 북반구에는 돈이 있고 남반구에는 돈이 없다. 이 불균형은 바로 기후위험의 지리학에 반영되어 있다.”고 했다. 해서 탄소 배출과 그것이 미치는 영향의 불평등은 기후변화가 표출되는 경위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는 게다. 탄소 식민주의는 천연자원을 계속 추출하고 수출한 뒤에 그 자원의 소유자들로부터 동떨어진 곳에서 이윤을 창출하는 식민주의의 유구한 체제로부터 비롯된 최근 버전이다.

 

오늘날 기후변화의 영향은 더 부유한 국가에서 수출하고 가난한 나라들은 경제성장의 대가로 수입하는 식으로 거래된다. 이런 식으로 글로벌 경제가 기후변화를 계속 악화시킨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제대로 보지 못한다. 그것은 지속 가능한 소비의 힘에 의해 계속 은폐되기 때문이다. 기후붕괴를 체계적으로 외주화함으로써, 부유한 나라의 이해관계에 따라 글로벌 위험을 재설계하는 게 이른바, 기후위기 시대의 탄소 식민주의.

 

글로벌 기업은 친환경 이미지 홍보에 집중한다. 이것이 녹색 자본주의의 환상이다. 잘사는 나라의 번화가에서 판매되는 제품은 어떤 유형으로든 친환경을 표방한다. 그러나 이것은 수익성을 높이는 한낱 환상에 불과하다. 기껏해야 그린워싱이고 노골적인 거짓일 수 있다. 저자는 민족국가를 기반으로 하는 국제 구조와 유산은 글로벌화로 상호연결된 세계에 더 이상 적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환경 저하를 시종일관 은폐한다고 비판한다.

 

결국 북반구가 누리는 경제적 이득은 남반구의 환경 손실을 토대로 구축된다. 게다가 잘 사는 나라의 환경안보에 필요한 자금은 글로벌 남반구의 노동자들을 날로 가혹해지는 기후위험에 내몲으로써 발생한 기업의 이윤으로 충당된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최근 탄소 식민주의라는 말이 등장하게 된 배경과 이유를 이해해야 한다. 탄소 식민주의는 단순히 물류적 가림막이 아니라, 식민적 권리를 조작하는 시장 기반의 도덕적 가림막으로 추출과정을 교묘하게 은폐하는 체제다.

 

개인의 기후변화에 대한 경험은 그의 사회적 지위, 소유한 부의 정도와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가난한 나라에서 기후변화는 개인의 노동조건 악화로 직접 경험된다. 경제적 불평등은 온실가스 배출이 전 세계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가장 큰 요인이다. 가난할수록 기후변화에 더 취약할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 환경 정의는 곧 경제정의다. 더 평등한 세계는 기후붕괴에 맞서 싸우는 우리 모두에게 가장 큰 무기이자 바람이다.

 

부탄은 지구상에서 탄소발자국이 마이너스인 유일한 국가다. 부탄의 숲은 매년 600만 톤의 탄소(부탄의 총배출량의 4)를 흡수해 지구의 공기를 적극적으로 정화함으로써, 부탄 국민에게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기여한다. 하지만 글로벌 자본주의를 떠받치는 세계은행의 시선은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본다. 그들에게는 누군가의 소유이거나 가치가 매겨져 지불되지 않으면 그것은 사용되지 않은 것과 다름없다.

 

우리에게 기후변화는 긴급하고 중요한 문제로 인식되는 동시에 지루하고 불분명한 과제로 인식된다. 해서 기후 문제는 전 지구적 위험을 초래하는 난제이면서 동시에 매우 분열적 문제다. 기후변화는 우리 시대를 규정하는 실존적 도전이지만,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무시하거나 심지어 부정하는 문제다. 그런 만큼 녹색 정책의 행간을 읽어내는 능력은 환경주의자들이 필수적으로 갖춰야 할 소양이다. 저자는 당대의 과제는 양의 탈을 쓴 늑대를 인식하고, 단순한 변화가 아니라 급진적인 변화를 촉구하는 것이랬다.

 

책의 말미에는 탄소 식민주의를 부추기는 여섯 가지 신화를 거론한다. 우리는 어떻게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행동할 것인가?

첫 번째 신화: 기후변화가 더 많은 자연재해를 유발한다? 애초에 재해는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환경의 취약성과 경제적 불평등과 만났을 때 발생한다. 자연재해는 경제적 재해의 결과다. 같은 허리케인이라도 싱가포르에서는 집안에 발이 몇 시간 묶이는 걸 의미하지만, 동티모르인에게는 죽고 사는 생명을 위협하는 재앙이다. 1990년 이후 스리랑카의 산사태는 26배 증가했는데, 그것은 주로 차 프랜테이션에서 비롯된 것이다. 글로벌 자본주의가 무려 500년 동안 세계를 지배한 결과, 그 지배는 오늘날에도 자연재해와 맞닥뜨리게 되는 맥락을 형성한다. 그것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두 번째 신화: 소비를 통해 기후붕괴에서 벗어날 수 있다? 지속 가능한 소비에는 분명 긍정적인 측면이 있지만, 그것은 자신이 부담해야 할 몫을 지불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종종 써먹는 도구로 기능한다.

 

세 번째 신화: 환경주의자들은 넷제로를 위해 싸운다? 탄소 배출을 넷제로 상태로 유지하자는 것은 인기 있는 담론이다. 하지만 환경주의에서 가장 보수적인 입장과 가장 급진적인 입장을 혼합한다면, 가장 큰 승리를 거두는 것은 결국 현상 유지를 주장하는 쪽이다. 보수 성향 매체들은 끝없이 이어지는 긴 논쟁과 토론, 의견 불일치로 주의를 분산시킨다. 이것은 시간을 버리는 소모적인 일이나 다름없다.

 

네 번째 신화: 국경 안보를 강화해 수억 명의 기후이주민을 가로막아야 한다? 기후변화의 영향에 적응하는 가장 효과적인 해결책은 가난한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더 잘살게 하는 것이다. 코앞에 닥친 재앙을 막기 위해 필요한 조치는 높은 장벽이 아니라 경제정의와 복지다.

 

다섯 번째 신화: 지속 가능성은 국내에서부터 시작된다? 영국은 지난 30년간 온실가스 배출량을 44% 줄였다지만, 그것은 배출의 외주화 덕분이다. 전 지구적인 사안에 민족국가 중심으로 조직된 사고방식의 전형이다. 잘사는 산업국이 환경적으로 큰 성과를 거두었다고 주장하는 동안에도 대기중 탄소 증가율은 계속 높아지고 있다. 1990년대에 탄소 밀도는 연간 1.5ppm 증가했으나, 2010년대에는 연간 2.5ppm으로 늘어났다. 선진국은 전 지구적으로 환경을 불모로 하더라도 자국의 영토만큼은 견고히 보호하는 환경정책을 고수한다.

 

여섯 번째 신화: 기후과학은 정치와 무관한 합의다? 우리에게 기후과학은 과학일 뿐만 아니라, 인간과 관련된 모든 노력처럼 정치적 문제다. 전 지구적으로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방법을 결정하는 것은 과학자들이 아니다. 심지어 그들이 결정하더라도 그것은 과학의 영역이 아니다. 기후변화를 다르게 보기 위해, 지금까지 실행된 것과는 다른 효과적인 해결책을 상상하기 위해 우리는 기후과학을 정치적인 시각에서 보아야 한다.

 

우리가 탄소 식민주의를 종식시키려면, 3 세계 노동자의 관점에서 다시 보기를 해야 한다. 기후는 절대로 혼자서 행동하지 않는다. 기후는 사회라는 옷을 입고 인간을 만난다. 기후는 거버넌스 체계와 경제 모습으로도 등장하고, 규범·도덕·신념의 모습으로도 등장한다. 그러는 가운데 가장 크게 고통받을 사람, 가장 적게 고통받을 사람, 기후붕괴의 승자가 될 사람을 결정한다.

 

우리는 국경 안에서 배출한 탄소를 집계하는 것이 아니라, 전 지구에 걸쳐 우리가 배출하고 사용한 모든 탄소를 집계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완벽한 의미의 탄소 식민주의를 종식시켜야 한다. 하지만 이미 누적된 탄소 배출로 인해 계속 야기되는 재앙은 피할 도리가 없다. 결국, 그 재앙은 나라와 개인에 따라 천차만별 일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