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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 명절에

평촌0505 2024. 9. 18. 19:34

이번 한가위 명절은 주말부터 이어져 5일간이나 연휴다. 나는 정년하고 백수 신세이니 연휴가 탄력적이다. 나이 들자 명절에 가족들이 우리 집으로 찾아오는 게 관례다. 나는 추석 당일에 아들과 손자랑 함께 해평 도문리에 성묘를 다녀왔다. 내게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와 부모님 산소, 그리고 위로 형님 세 분(형수 두 분) 산소가 순서대로 그곳에 있다. 가족 묘원이다. 우리 내외도 언젠가는 그곳으로 갈 게다.

 

산소에 갔다가 집에 오니 딸 내외가 와 있다. 명절에 가족이 모여 함께 만나니 반갑다. 쉬운 듯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명절에 가족은 만나지 않으면 서운하지만, 만나면 고강도의 감정 노동이 수반된다. 나이 들면 자식도 가끔 만나야 반갑지 자주 만나면 서로 부담스럽다. 가족 간의 관계일수록 적정선이라는 게 필요하다. 각자의 자존과 자율이 존중되는 가운데 적정 수준에서 친밀 관계를 유지한다는 게 결코 쉬운 게 아니다. 답이 정해져 있지 않다. 시간이 필요하고 서로 노력해야 한다.

 

나이 들수록 남에게 말하기 어려운 가족관계의 속사정은 누구에게나 있기 마련이다. 그게 사람 사는 모습이고 가족 간의 관계 특성이다. 집사람은 가족관계에 헌신적이면서도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편이다. 내 경우는 비교적 자기 중심적이고, 좋게 말하면 자리적(自利的)이다. 그럼에도 내가 이기적인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가정생활은 전형적으로 이타적 삶이다. 결혼해서 51년째 함께 살아온 마누라는 내 단점을 가장 잘 꿰고 있다. 나이 들면서 나는 귀신은 속여도 마누라는 속일 수 없다는 생각이다.

 

지나고 보면 마누라의 잔소리가 내게 약이 되는 경우가 많다. 반드시 다 그런 건 아니지만. 해서 가족관계의 중심은 부부관계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그럼에도 부부관계는 물론 부모 자식과의 관계에서도 좀 의연해질 필요가 있다. 서로 무심하지 않으면서 지나치게 의존적이지 말아야 할 게다. 그래서 가족관계에서도 중도’(中道) 혹은 중화(中和)가 긴요하다고 본다.

 

불교에서 중도는 양극단을 버리되 동시에 하나로 포용하는 것이다. <중용>에서 중화는 미발의 기준으로 중()을 말하면서, 그 발함의 과정에서 (모자라거나 넘침이 없는) ()를 말한다. 이른바 천지화육’(天地化育)이다. 이 대목에서 나는 다시 평상심’(平常心)을 생각한다. 사람 관계에서 우리는 수시로 이런저런 이유로 마음이 흔들린다. 바람이 불면 물결이 일 듯이 인연 따라 마음이 흔들리는 건 어쩔 수 없다. 다만 그 흔들림을 알아차리는 게 중요하다.

 

나이 들면서 하나 깨친 게 있다. 살아가면서 특히 부부간에는 이런저런 갈등이나 다툼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다투더라도 기능하면 빨리 수습하는 지혜가 긴요하다. 다툼을 키우지 말아야 할 터이다. 우선 다툴 기력이 딸린다.

 

내 경우 자식과의 관계는 이심전심으로 거의 중화를 유지하는 편이다. 가끔 속으로 좀 섭섭한 게 있어도 집사람에게는 넌지시 비추어도 자식들에게 직접 표출하지 않는 편이다. 대부분은 시간이 해결해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간이 약이랬다. 이래저래 평상심을 잃지 않으면 내게도 좋고 다른 가족에게도 이롭다.

 

가족의 굴레는 적정해야 서로에게 좋다. 중요한 것은 각자 자존성을 유지하면서 서로 존중하는 삶의 품위다. 추석 명절에 가족관계의 어려움을 다시 반추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