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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소녀

평촌0505 2024. 9. 26. 16:56

누구에게나 첫사랑이라는 게 있다. 고향은 사춘기에 첫사랑을 한 곳이랬다. 그렇다. 나는 고1 여름 방학 때 고향에서 첫사랑 소녀에게 처음 연애편지라는 걸 써 보냈다. 고향을 떠나 부산서 고등학교 다닐 때, 고향 생각과 함께 첫사랑 소녀가 그리웠다. 향수와 연정이 하나로 뒤섞였다. 그래도 나는 고등학교 시절 공부는 열심히 한 편이었다. 서울서 철학과를 다니다가 대구로 내려와 특수교육 쪽으로 전공을 바꾸는 과정에서 나는 이래저래(경제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내 일생에서 가장 어려운 시절이었다. 그러는 와중에 첫사랑 소녀와도 소원해졌다.

 

내가 대학 졸업하기 전에 그녀는 결혼했다. 나는 대학원 공부하는 과정에서 지금의 집사람을 만나 대학에 전임교수로 발령받아 곧장 결혼(19734)했다. 결혼 후에 나는 정서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안정되어 갔다. 그 연장에서 이 나이까지 왔다. 열심히 살았다. 그러고는 50대 중반 무렵에 고향 친구들과 어울려 만나는 과정에서 우연히 중년 부인이 된 그 소녀를 만났다. 세월이 무상했다.

 

그러고는 이제 80줄의 노년에 들었다. 어제(9/20) <지식과 세상> 조합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고향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반가운 사람을 바꿔준다기에 전화를 받으니, 목소리만 듣고는 누군지 알 수 없었다. 상대가 첫사랑이라는 말을 하기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놀랍고 반가웠다. 친구 전화로 길게 이야기할 수도 없어 그냥 건강하냐고 묻고 전화가 잘 안 들린다기에 마무리했다. 그게 끝이었다.

 

그전 같으면 곧장 고향으로 차를 몰고 갔겠지만, 이제는 비 오는 날 장거리 운전 자체가 내게는 부담이다. 집에 들어왔지만, 심란했다. 그리고 늙어가는 마누라를 보니 공연히 미안했다. 이 나이에 양심에 부담 주는 일은 자제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나는 늙어간다.

 

새벽 꿈속에 예의 고향 친구가 보였다. 아침에 일어나 친구에게 카톡으로 어제 밝은 목소리의 주인공에게 건강과 행복을 전한다고 했다. 조금 지나 친구가 카톡 회신으로 본래 영혼이 자유로운 사람이라고 전해 주었다. 그 말이 가슴에 와닿는다. 나는 이도 저도 아닌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