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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물 진화와 인간의 영성

평촌0505 2024. 10. 4. 15:23

미생물의 진화과정에서 지구 생명의 막내둥이로 호모 사피엔스가 출현했다. 이것은 생명의 역사에서 우연인가 필연인가? 아마도 진화학의 관점에서 보면 우연 속의 창발적 진화일 것이다. 지구에서 생명의 역사는 30억 년 이상이지만, 척추동물의 출현은 약 5억 년 전이다. 생명의 진화과정에서 미생물(박테리아)의 역사는 곧 자연사(自然史)의 반영이다. 미생물은 생명의 원조다.

 

나는 미생물의 진화과정에서 본 인간존재 위상과 그 본질에 관심이 간다. 생명의 진화과정에서 인간의 위상은 하나의 종()에 불과하지만, 문명사의 관점에서 인류는 지구를 지배하는 유()로서 주목을 받는다. 인간존재의 실재(reality) 혹은 그 본질(nature)은 어떻게 진화할까? 이것은 자연사적 측면과 인문적 측면을 아우르는 질문일 게다.

 

마이크로 코스모스: 40억 년에 걸친 미생물의 진화사(린 마굴리스, 도리언 세이건, 홍석희 옮김, 2011)영성이란 무엇인가: 내 삶을 완성하는 영성에 관한 모든 것(필립 셀드레이크, 한윤정 옮김, 2023)은 내게 생물학적 존재로서 인간과 정신적 존재로서 인간을 함께 되짚어보게 한다. 인간은 생물학적 존재이면서 그 이상의 존재다.

 

마이크로 코스모스에서 루이스 토머스는 인류가 모든 생물 가운데 우점종(優占種)이자 문명화 이후 자연을 주도적으로 경영해 왔던 만큼, 인간은 생물학적 진화의 정점을 찍었다고 했다. 하지만 인간은 실수를 저지르는 취약한 존재로 어느 날 갑자기 멸망해서 극히 얇은 화석층을 남긴 채로 사라져 버릴 생물 종이 될지도 모른다고 했다. 인류세(Anthropocene)에 인간존재의 양면성(빛과 그림자)을 잘 지적해 주고 있다.

 

지구 최초의 생명체는 하나의 박테리아 세포였다. 박테리아는 약 35억 년 전에 출현해 모든 생명체의 궁극적(원조) 조상이 되었다. 해서 우리의 근원을 알기 위해서는 박테리아로 돌아가 그들의 진화과정을 살펴야 할 게다. 마이크로 코스모스에는 원시 박테리아가 지구 시스템 속에서 생물진화를 추동했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근본 생태주의자 데이브 포먼은 우리 인류가 자연의 중추신경이자 가이아(Gaia)의 두뇌라는 입장과는 동떨어지게 자연을 탐식하는 암세포라고 선언했다. 인류세에 비대해진 인간존재의 부정적 측면을 여실히 지적하고 있다. 마이크로 코스모스는 다윈주의 진화론과는 달리 경쟁보다는 공생(symbiosis)에 기반한 생물 역사를 견지한다. 생명현상은 모든 참여자가 협력과 공생을 통해서 상생하는 벤처기업의 활동과 비견된다는 게다.

 

우리에게 식량과 산소를 공급해 주는 광합성 생물은 대표적인 상생의 관계적 존재다. 진화에서 공생의 원리는 인류가 진화학적으로 번영하기 위해서는 침략적인 기생단계를 탈피해 다른 생물들과 공생하고 재결합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하지만 인류 진화는 분배와 살육, 경쟁(전쟁)과 협력(평화)의 양면을 함께 반영하고 있다. 오늘날 기술주의자들(특히 군산복합체)은 군비경쟁을 인류 진화의 추진력으로 삼는다. 잘못된 진화의 재앙이다.

 

필립 셀드레이크는 영성이란 무엇인가(Spirituality: A Very Short Introduction)(2012/2023)에서 영성이란 인간 정신이 최대한의 잠재력을 실현하기 위한 생활방식과 수행이랬다. 해서 인간존재와 그 삶은 생물학 이상이라는 게다. 저자는 영성은 인생의 의미와 삶에 대한 염원(소망)을 담고 있다했다. ‘영적인 것은 인간존재의 요소 중 하나라기보다 전체로서 삶이라는 통합요소와 신성함’(the Sacred)의 추구와 관련된다. 영적 삶은 도구화된 삶의 태도와 대조되는 자기 성찰적 실존을 강조한다. ‘영성은 궁극적 가치에 대한 관심이다. 영성은 외재적 실용성보다 내재적 삶의 방식에 집중한다.

 

오늘날 영성은 특정 종교와 상관없이 모든 사람의 타고난 본래성’(本來性)에 내재한다고 본다. 특히 동양철학과 종교적 성향이 그렇다. 이런 맥락에서 길희성 교수는 세속적 휴머니즘에 대응해 영적 휴머니즘을 제기했다. 이 대목에서 나는 유학의 천인합일’(天人合一)과 불학의 자리이타’(自利利他)를 통한 영적 삶의 수행을 생각한다.

 

영적 수행을 위해서는 자기희생과 자기절제(self-discipline)가 요구된다. 삶의 방식으로서 영성은 그 상승 통로로서 능동적-실천적 삶과 통한다. 노년에 신체적 노화에도 불구하고(어쩌면 노인이기 때문에) 정신적 상승을 유지하는 것은 도덕적·영적인 통합과 연관된다. 나는 인류세의 도래와 기후생태 위기에 대응해 생태적·영성적 삶의 복원을 생각한다.

 

몸과 마음이 둘이 아니(不二)라면, 생물학적 존재로서의 내가 영성적 존재로서의 나와 하나로 만나는 통합된 삶의 양식이 긴요하다. 이것은 노년에 내게 주어진 필생의 숙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