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세는 지나가고 인류세가 도래했다. 이제 기후 안정기는 지났고 기후변화가 80억 인류의 실존적 위기로 다가오고 있다. 나는 홀로세의 마지막 세대이자 인류세(anthropocene)의 첫 세대이다. 인도의 차크라바르티는 기후변화를 당대의 ‘시대 의식’(epochal consciousness)으로 제기하고 있다. ‘시대 의식’은 일종의 문명 위기의식이다. 기후변화는 지구 행성에서 생명의 조건을 둘러싼 심각한 질문을 제기하고, 이런 질문의 맥락에서 인간존재를 성찰해야 한다.
야스퍼스는 “시대 의식은 결론의 여지를 주지 않고 인간에게 주어진 것이어서, 그 의식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체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 이유는 해결하기 어려운 긴장 속에서 견뎌내는 것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인류세에서 기후생태 위기에 따른 인간의 ‘곤경’은 피할 수 없는 난관이다. 지구에서 생명의 역사는 30억 년 이상에 이르는 장구한 역사다. 이런 생명의 역사 바통을 이어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한 것은 불과 30만 년 전이다. 우리가 이런 깊은 생명의 역사에 빠지는 것(falling)은 일종의 인식 충격을 동반한다.
인류세의 역사 인식에서 우리는 인간중심에서 생명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 생명은 경쟁이 아니라 공생의 역사다. 생명의 진화에서 공생의 원리는 인류가 진화학적으로 번영하기 위해서는 침략적인 ‘기생’ 단계를 탈피해 다른 생물들과 공생하고 재결합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하지만 인류 진화는 분배와 살육, 경쟁(전쟁)과 협력(평화)의 양면을 함께 반영하고 있다. 오늘날 기술주의자들은 군비경쟁을 인류 진화의 추진력으로 삼는다. 잘못된 진화의 재앙이다. 이른바 인류세의 재앙이다.
차크라바르티는 “우리가 깊고 거대한 역사에 빠지는 것은 ‘시대 의식’에 들어 있는 인간 중심적 세계관과 생명 중심적 세계관 사이의 긴장과 관련” 있다고 했다. 그 긴장은 쉽게 해소될 수 있는 게 아니지만, 우리에게는 인류세에서 인간 중심의 세계관에서 생명 중심의 세계관으로 패러다임 전환이 긴요하다. 이런 인식 전환이 인류세의 시대 의식 핵심이자 시대적 과제다.
박찬석(전 경북대 총장)은 <에콰도르 생물의 다양성>에서 에콰도르는 2008년 세계 최초로 헌법에서 ‘자연의 권리’를 부여한 나라랬다. “국가는 생물 다양성을 위협하는 활동을 방지하고, 멸종 위기종의 유전자 변형, 도입 및 확산을 금지해야 한다”고 해서 세계적 반향을 일으켰다. 그는 “경제개발은 생명의 종에는 천적이다. 인간의 생명을 유지 보전해 주는 생물의 다양성을 인간이 멸종 시키고 있다. 아이러니한 일”이랬다. 지속 가능성을 훼손하는 성장은 발전이 아니다.
인류세에 자연의 권리를 헌법에 명시함으로써, 공생하는 생물의 다양성을 보존하는 노력은 뭣보다 긴요하다. 그 노력은 장기적인 인내와 체력을 요한다. 이것은 인류세에 ‘시대 의식’의 나침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