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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인생의 주인공 되기

평촌0505 2021. 3. 11. 16:10

  주변 지인들에게 나는 회갑이 지나고서야 조금 내 정신을 차리겠더라고 실토한다. 그전까지는 가족 건사하고 내 앞 가름하기 바빠 어찌 살아왔는지 차분히 자신을 되짚어 볼 겨를조차 없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회갑이 지나고 더 정확히는 정년을 하고 내 삶의 자유를 제대로 맛보기 시작한 것 같다. 실제로 60대 중반에서 70대 후반인 지금까지 맘먹은 대로 일도 잘되고 이런저런 여유를 느끼며 산다.

 

코로나 와중에 좀 따분하기도 하지만, 내 삶의 큰 줄기에는 별로 달라진 게 없다. 오히려 읽고 쓰기에 더 집중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었다. 최근 핀란드 철학자이자 심리학자인 프링크 마르텔라(F. Martela)가 쓴 『무의미한 날들을 위한 철학』(성원 옮김, 2021)을 손에 든 것은 내게 여유로운 삶의 과정을 잘 드러낸다. 저자는 우리에게 보편적인 인생의 의미는 없다고 했다. 각자가 선택하고 경험하는 ‘인생 안에서의 의미’가 있을 뿐이라는 게다. 흔히 철학에서는 보편적인 인생의 의미를 탐구하지만, 저자는 내가 선택하고 경험하는 삶 속에 인생의 진정한 의미가 있다는 게다. 참 신선하게 다가오는 말이다.

 

저자는 “당신은 우주 속에서 하찮고 유한하면서 자의적인 존재이지만, 그래도 괜찮다”고 했다. 왜냐하면 당신은 자신이 마음껏 동원할 수 있는 도구를 가지고 바로 지금 여기서 더 의미 있는 삶을 빚어낼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게다. 우리의 인생은 이미 의미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성찰적으로 이해하는 게 뭣보다 긴요하다. 그 의미는 삶의 밖에서가 아니라 내 인생의 안에서 일어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인생의 의미에 대해 생각할 때 우주의 기원 같은 거대한 형이상학적 문제에서 시작하지 마라. 대신 당신의 삶의 경험에서 시작하라. 지금 이 순간 이곳에서 시작하라. 최근 경험에 대해 잠시 성찰하라. 어떤 경험이 다른 경험보다 더 의미 있었는가. 지금의 삶에서 가장 의미 있는 경험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나면 미래에 그런 경험을 더 많이 보장하는 선택을 하는 법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 …(중략) 자신의 인생 경험을 출발점으로 삼아서 유의미함과 충만함의 감각을 키워라(이 책, pp.124-125).

 

인생의 의미를 형이상학적인 문제로 추상화하지 말고, 자신의 생생한 삶의 경험을 출발점으로 삼아 충만함의 감각을 키우란다. 삶의 유의미함은 인생이 끝난 뒤가 아니라, 지금 진행되는 동안에 나타난다. 듀이는 “현재 경험의 의미를 증대하기 위해 행동하라.”고 했다. 인생 안에서의 의미는 현재의 유의미한 경험을 축적․재구성하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해서 자기인생을 스스로 책임지고 싶다면 너무 늦기 전에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게 무엇인지 되짚어 보는 것이 긴요하다.

 

저자는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이 유한하다는 앎을 통해 자신이 죽을 수밖에 없다는 유한의 존재성을 절실히 깨치는 방편이 되었다고 고백한다. 그는 “인생은 덧없다. 매 순간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이 최선이다. 비법은 이 하나의 인생이 우리가 아는 한 당신이 가진 전부라는 점을 떠올리며 제한된 하루하루를 음미하는 것”이랬다. 인간에게는 자신이 의식적으로 몰두하면서 성찰적으로 추구하는 가치를 선호하는 성향이 있다. 몰입할 만한 가치를 인식하고 그것을 내면화 할 때, 인생은 참으로 귀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런 측면에서 저자는 삶의 지속적 성장과 고결함을 안내하는 ‘자기결정이론’을 말한다. 그는 자기결정이론은 기본적인 심리적 필요로 자율성, 유능감, 관계 맺음, 그리고 선의(善意)로 충족될 수 있다고 했다. 이것은 의미 있는 삶을 회복하는 자기결정의 4가지 도구이다. 우리가 의미 있게 살고 있다는 느낌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 맺음에서 잘 드러난다. “당신에게 정말로 소중한 사람,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생기와 의미가 솟아나는 그런 사람을 떠올릴 수 있나요?”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당신이 사랑하는 누군가의 봉투에 당신의 이름이 적혀 있다면 당신은 행복한 사람이다.

 

저자는 타인을 통해 자신의 인생에 기여하는 도구로 ‘선의’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삶을 말한다. 해서 당신의 인생에서 의미를 느끼려면, 다른 사람들의 인생에 의미 있는 기여를 하고 있다고 느낄 방법을 찾으란다. 공감하는 능력은 그 대상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좋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어떤 일을 하루에 여덟 시간 또는 그 이상을 할 수 있는 직업에 종사할 정도로 운이 좋은 사람들은 이미 의미 있는 인생의 원천을 자기 삶 속에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경우는 자기 일의 선한 영향력을 그저 되짚기만 하면 된다(이 책, p.184).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대표적 일은 어떤 것일까? 청소하는 일, 환자나 장애인을 돌보는 일,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 우선 내 머리에 떠오른다. 이 대목에서 나는 다시 자리이타적(自利利他的) 삶을 생각하게 된다. 먼저 자신에게 이로우면서, 결과적으로 다른 사람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치는 일이다.

 

의미 있는 삶은 내가 선택한 방식대로 살아갈 자유를 향유하는 ‘자율성’이 그 중요한 도구다. 저자는 “인간은 최상의 상태일 때 주체성과 영감에 따라 움직이고 배우려고 노력하며, 자아를 확장하고 자신의 재능을 책임감 있게 활용한다.”고 했다. 무슨 일이든 자율성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오래 가지 못한다. 억지로 해야 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원해서 하는 일이래야 의미 있고 생명력을 가진다. 인간에게 성장은 자유와 자율의 결과이다.

 

의미 있는 삶의 또 하나의 도구인 ‘유능감’은 좋아하는 것에 통달하려는 강열한 경험에서 얻어진다. 인간은 자신이 발견한 능력(선천적․후천적 능력)의 실행을 즐기고, 이 즐거움에서 자기 능력의 질을 향상시킨다. 우리는 인생에서 유능감, 통달, 능숙함을 경험하는 활동을 통해서 자기 삶의 보람을 느낀다. 저자는 “학습과 개인적 성장은 높은 만족의 근원이고, 우리 인생이 좋아지고 있다는 기분을 선사한다.”고 했다. 우리는 완전한 몰입의 순간에 살아 있다는 기분을 가장 잘 느낀다. 그는 자아실현은 자율성과 유능감이라는 두 가지 필요를 동시에 만족하는 것이랬다.

 

실존의 위기에 시달리던 톨스토이는 자신을 이 세상에서 붙들어 메어주는 ‘두 방울의 꿀’로 가족에 대한 사랑과 글쓰기에 대한 사랑을 들었다. 이것은 다른 사람과 관계 맺기와 자신과의 관계 맺기에서 얻은 선물이다. 그럼 나의 두 방울 꿀은 무엇인가? 또 당신의 두 방울은 무엇인가?

 

저자는 “인생은 프로젝트가 아니라 이야기”라 했다. 프로젝트로서 삶은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삶을 통해 무엇인가를 소유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해서 당신이 경험하는 것이나 목격하고 표현하는 것을 완전히 독창적으로 구성한 이야기로 생각하란다. 이야기는 경쟁이 아니라, 그냥 펼쳐지는 것이다. 인생은 음악과 같은 것이다. 당신은 음악이 연주되는 동안 노래를 하거나 춤을 췄어야 한다. 그 음악이 끝나기 전에.

 

내 인생에서 음악도 거의 끝 소절에 이르렀는데, 모쪼록 그 끝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싶다. 삶의 과정은 누구에게나 대등하고 독특한 이야기다. 그 이야기의 주인공은 모두가 존엄하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언제나 미완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