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 6

팔순 즈음에

세월은 무상(無常)하다. 해방둥이인 내가 팔순을 맞는다. 어머니는 이른 아침에 보리쌀 씻다가 나를 낳았단다. 광복을 20여 일 앞둔 때(1945년 음력 6월 18일)였다. 어제가 79년 전 그날이다. 어머니가 그립다. 내게 살아온 날은 길고 살아갈 날은 그리 많지 않다. 격변의 세월을 살았다. 식민 통치하의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나 지금은 선진국 반열에 든 나라에서 노년을 보내고 있다. 우리나라가 압축성장한 만큼 나도 압축적 인생을 살 수밖에 없었다. 한반도에서 내 평생은 분단 시대의 삶이다. 이제는 분단체제로 굳어지고 있다. 분단의 끝자락이 잘 보이질 않는다. 분단의 선은 강대국의 냉전체제 산물이지만, 그게 하나의 체제로 굳어지는 과정에서 우리 민족 내부의 책임도 크다. 내 인생 여정에서 가장 어려..

카테고리 없음 2024.07.25

기후위기 시대에 춤을 추라니?

날이 갈수록 기후생태 위기는 인류의 실존적 위기로 다가오고 있다.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 춤을 추라니 뭔 말인가? 영화감독 이송희일이 최근 『기후위기 시대에 춤을 추어라: 기후-생태 위기에 대한 비판과 전망』(2024)을 냈다. 이 책은 기후위기 시대에 숨겨진 정치-경제적 담론을 소환함으로써, 우리에게 기후위기에서 벗어날 상상력과 춤추는 용기를 불어넣는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이렇게 말한다.  기후위기의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거나 인간과 인류에게 그 죄를 떠넘기는 자유주의적 세계관, 탄소 상쇄와 탄소 포집 기술로 기후위기를 넘어설 수 있다고 주장하는 녹색 자본주의의 터무니없는 낙관론, 기후위기를 인구증가 문제로 환원하는 멜서스주의, 세계가 곧 망할 것이라고 공포를 조장하는 파국론, 기후위기를 사회체제와 무..

카테고리 없음 2024.07.24

여성 가사 노동과 건강

자본주의는 임금노동이 아니면 노동 가치로 인정하지 않는다. 과연 우리 삶을 유지하는 게 상품생산과 소비뿐일까? 누가 밥을 짓고 아이를 돌보는가? 빨래는 누가하고 아픈 가족은 누가 보살피는가? 인간의 삶을 돌보는 가장 중요한 노동에 왜 아무도 비용지불을 하지 않을까? 식민지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에서 강요된 노예 노동처럼, ‘가정이라는 플랜테이션 농장’에서 여성들도 똑같이 임금이 없는 노동을 제공한다. 가부장제 자본주의가 여성의 가사노동을 공짜로 추출함으로써 축적체제를 확장해 온 것이다. 1973년에 나랑 결혼하고 아내는 이내 교직 생활을 접고 전업 가정주부가 되었다. 속으로 나는 아내가 교직에 좀 더 종사해주길 바랐다. 신혼 초 단출한 살림에 경제적으로 좀 더 도움을 받고 싶었다. 하지만 남편으로서 내 체면..

카테고리 없음 2024.07.17

해운대 나들이

지난 주말에 모처럼 집사람과 해운대 나들이를 갔다. 딸 내외가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집사람이 두어 달쯤 다리가 좀 불편했으나, 지금은 좋아지고 있다. 동대구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해운대 버스 정류장에 정오 12시경 도착했다. 딸 태영이와 사위 조 교수가 마중 나와 반갑게 합류했다. 부산은 내가 1961년부터 3년간 고등학교(동래고)를 다닌 곳이다. 그리고 해운대 동백섬에 소풍 간 추억도 있다. 1973년 결혼하고 신혼여행도 해운대로 갔다. ‘해운대 엘르지’라는 대중가요 생각이 난다. 그때까지만 해도 해운대는 조용한 해수욕장이 딸린 아늑한 관광지였다.  그러나 지금의 해운대는 그야말로 상전벽해(桑田碧海)다. 완전히 빌딩 숲으로 변해버린 초현대식 국제도시다. 고급호텔과 아파트로 거대한 빌딩 숲을 이루고 있다..

카테고리 없음 2024.07.12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마음가짐

21세기에 인류가 맞닥뜨린 가장 절박한 문제는 기후변화다. 해서 지금은 기후변화가 위기가 되었다. 그 위기는 전 지구적 도전이다. 기후생태 문제는 복합적인데다가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힌 난제다. 최근에 나는 『지구를 구하는 뇌과학: 뇌과학은 어떻게 기후위기를 해결하는가』(Ann-Christine Duhaime, 박선영 옮김, 2024)를 손에 들었다. 저자는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고 어떤 선택을 하며, 무엇을 중시하는지 뇌과학적으로 접근한다. 심지어 현대문명을 이끌어 온 역사도 뇌의 작동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본다. 그가 말하는 뇌의 작동방식은 곧 마음의 작용이다. 그는 우리의 뇌는 단기 결과를 기반으로 하는 의사결정을 선호하는 편이어서, 기후 문제는 뇌의 관점에서 볼 때, 더욱 어려운 일이랬다. 이 책..

카테고리 없음 2024.07.10

김훈과 유시민의 책

우연히 작가 김훈과 유시민의 신간을 동시에 입수했다. 나로선 흔치 않은 일이다. 나는 가능하면 읽고 싶은 책을 한 권만 골라 교보에 주문을 넣는다. 그래야 한 책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근데 이번에는 김훈의 산문 『허송세월』과 유시민의 『그의 운명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생각』을 함께 골랐다. 김훈은 나보다 세 살 아래의 동년배 세대이고, 유시민은 나보다 열여섯 살 아래다.  같은 연배여서인지 김훈의 글에 더 친밀감이 간다. 서문 격인 늙기의 즐거움> 첫 문장에 “핸드폰에 부고가 찍히면 죽음은 배달상품처럼 눈앞에 와 있다. 액정화면 속에서 죽음은 몇 줄의 정보로 변해 있다.” 디지털 시대에 어김없는 현실이지만, 표현이 기막히다. 말년>에는 “나이를 먹으니까 삶과 죽음의 경계가 흐려져서 시간에 백내장이..

카테고리 없음 2024.0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