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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세와 에너지 패권전쟁

평촌0505 2025. 5. 12. 15:46

산업혁명은 곧 에너지혁명이다. 산업혁명 초기에는 주로 석탄에 의존해 왔으나, 2차대전 이후에는 석유, 원자력, 천연가스 외에 재생에너지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에너지 과잉 소비는 마침내 지구 시스템에 균열을 일으키는 인류세’(anthropocene)를 초래한 게다. 최근 양수영(한국석유공사 사장 역임)세계에너지 패권전쟁(2025)을 냈다. 나는 이 책을 통해서 세계 강국들의 에너지 패권전쟁이 우리를 어떻게 인류세의 곤경에 빠트리고 있는가에 관심이 쏠린다. 책에는 세계에너지 패권을 세 갈래로 나눈다.

 

첫째는 석유를 둘러싼 에너지 전쟁이다. 20세기는 석유 패권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석유를 보유한 나라는 일약 경제적 풍요를 누리게 되었다. 1차 산업혁명이 석탄을 기반으로 한 에너지혁명이었다면, 2차 산업혁명은 석유와 전기를 기반으로 한 에너지혁명이었다. 20세기에 미국에서 휘발유와 경유를 연료로 하는 자동차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석유 수요가 급증했다. 미국은 세계 최대 석유 생산국이지만,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최대 석유 소비국이다.

 

1960년에 중동의 산유국 중심(베네수엘라,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이라크, 이란)으로 석유수출국기구로 OPEC를 설립했다. 산유국들이 석유회사들에 맞서 자신들의 이익을 보호하고자 조직한 기구다. OPEC 창설 회원국 다섯 나라의 석유 수출량은 당시 세계 석유 수출량의 80퍼센트 이상을 차지했다. 1970년대에 중동 산유국의 석유 금수 조치는 세계 경제에 치명타를 입혔고, 석유의 무기화가 얼마나 무서운지 보여주었다.

 

둘째는 천연가스가 주요 에너지원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른바 천연가스 전쟁이다. 러시아에서 발트해를 가로질러 독일로 가는 가스관이 완공되자 유럽 천연가스 시장에서 장악력을 쥔 러시아가 2022년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했다. 이로써 에너지 무기화로 인한 위험을 전 세계가 새삼 체감하고 있다. 천연가스는 기체이기 때문에 가스관을 통해서만 수송할 수 있었다.

 

그러다 천연가스를 섭씨 영하 162도에서 액화하는 LNG 기술이 개발되어, 수송에 일대 혁신이 일어났다. 2000년대 들어 LNG 플랜트와 저장 기술이 발전하고 대규모 수송이 가능한 LNG 선박이 공급되면서 천연가스 수요와 공급이 급격히 늘어났다.

 

셋째는 기후 위기에 대응해 탄소 배출 줄이기다. 지구온난화의 주요 원인을 제공하는 화석에너지 사용을 대폭 줄여가야 하는데, 과연 그것이 어느 정도 실현 가능한가?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협의체(IPCC)는 산업화 이전에 비해 기온이 섭씨 1.5도 상승하는 시점을 2052년으로 예측했다가, 6차 보고서(2021)에서는 2040년으로 12년이나 당겨 발표했다. 최근에는 2030년으로 잡거나 이미 그 선(1.5도 상승)을 넘어섰다고도 한다. 피할 수 없는 곤경이다.

 

2023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은 이산화탄소 환산 기준으로 538억 톤이다. 2000년의 408억 톤에 비해 무려 32퍼센트 증가했다. 이것은 인류가 여전히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풍력과 태양광을 활용한 재생에너지 확대가 절실하지만, 그 활용에서 한계를 보인다.

 

풍력과 태양광을 활용한 재생에너지는 전기만을 생산하는 에너지다. 우리가 사용하는 최종 에너지 중 전기가 차지하는 비율은 20퍼센트에 불과하다. 수송 연료, 석유화학제품 연료, 도시가스 등 전기 외 형태로 사용되는 에너지가 무려 80퍼센트에 달하고 있다. 저자는 기후 위기 시대에 재생에너지 전환으로 새로운 패권 시대가 열리지는 않을 것이라 했다. 미래가 암울하다.

 

세계 1차 에너지 소비에서 석유는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석유는 교통과 수송 수단의 연료로 가장 많이(57%) 쓰이고, 그 외 석유화학(14%)과 산업체(13%) 등에서 활용되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세계 석유 소비량은 계속 늘어날 터이다. 갈수록 지구 기후생태 위기가 절박함에도 화석에너지 사용량은 줄어들지 않는다. 현실적으로 탄소중립은 현란한 언어유희에 불과하다.

 

이런 맥락에서 저자는 기후 위기 시대에 에너지 전환이 절실함에도 에너지 패권의 판도는 여전히 화석에너지 보유 여부에 달려 있다고 했다. 결국 21세기에도 석유와 천연가스를 많이 보유한 국가가 에너지 패권을 쥐게 된다는 게다. 이런 측면에서 미국과 러시아는 에너지 패권전쟁 주도국이다. 장기적으로 볼 때는 러시아가 패권을 누릴 전망이다.

 

인류세의 강을 건너지 않기 위해서는 화석에너지 소비를 과감히 줄여가야 한다. 그러나 기존의 경제성장 욕구를 포기하지 않는 한, 현실적으로 화석에너지 감축은 불가능하다. 이제 강대국 중심의 에너지 패권전쟁은 인류가 살아남기 위한 생존 전쟁이다. 지금은 생존이 곧 전쟁과 같은 암울한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