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 14

인류세의 세상살이

나는 홀로세의 마지막 세대이고 인류세의 첫 세대다. 지구 행성에서 대전환 혹은 거대한 가속화의 시대를 살고 있다. 지속 가능한 미래를 가늠하기 어렵다. 그래도 나는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실존적 존재다. 21세기는 다중위기 시대다. 인도의 지구 행성 역사학자인 차크라바르티는 기후변화를 당대의 ‘시대 의식’으로 설정하고 있다. 이것은 일종의 문명 위기의식이다.  차크라바르티에 따르면, “우리는 깊은 역사, 깊은 지질학적 시간에 빠졌다. 이 깊은 역사로 빠지는 것은 모종의 인식 충격을 동반한다. 깊고 거대한 역사에 빠지는 것은 시대 의식에 들어 있는 인간 중심적 세계관과 생명 중심적 세계관 사이의 긴장과 관련”있댔다. 인류세에 우리는 긴장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내가 보기에 인류세의 시대 의식은 곧 지구..

카테고리 없음 2025.03.31

손녀의 선물: 작은 수첩

작년에 대학생이 된 손녀(지현)가 새해 선물로 내게 작은 수첩을 사주었다. 내가 수첩을 들고 다니는 걸 눈여겨보았던가 보다. 할아버지에 대한 손녀의 관심이 기특하다. 손녀는 어릴 때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우리 집에서 함께 살았다. 손녀는 우리 집 오아시스였다. 특히 아내의 손녀에 대한 내리사랑은 지극하다. 지금도 아내는 손녀가 서울서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늦게 귀가하면 꼭 확인차 전화를 건다.  오늘은 손녀가 선물로 준 수첩에 생각나는 김에 ‘인류세에 살아가기’라는 제목을 메모했다. 그리고는 “디지털 시대 삶의 양식에서 인류세 삶을 어떻게 재구성할 것인가? 생태적 삶의 복원과 영성적 삶에 친숙해지기”라고 적었다. 이런 식으로 내 블로그에 포스팅할 글 제목과 아이디어를 수첩에 적어 놓은 게다. 내친김..

카테고리 없음 2025.03.29

산불 위기

산불이 잡히지 않고 있다. 겨울 가뭄 탓에 영남지역에 산불이 심하다. 큰 산불이 캘리포니아, 캐나다, 호주에서나 일어나는 줄 알았는데,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주민들은 80평생 이런 불은 처음이랬다. 경북지역에만 사망자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 끔찍한 일이다.  산불로 숲과 나무가 타버리면서 이산화탄소의 양도 급증한다. 수십년 동안 광합성으로 식물체에 저장된 탄소가 순식간에 대기로 쏟아져 나온다. 사이언스 논문에 따르면 2001년에서 2023년 사이 지구촌의 산불로 발생한 이산화탄소의 양이 60%나 늘었단다. 충격적이다. 괴물 같은 산불 앞에 인간존재는 참 작아 보인다. 화난 자연을 목도 하면서 우리는 한없이 겸손해지지 않을 수 없다. 신문(한겨레 그림판) 만평에 “우리의 어리석음을 부디 가여이 봐주..

카테고리 없음 2025.03.28

극우 포퓰리즘과 민주주의

최근 전 세계적으로 극우 포퓰리즘이 극성을 부리는 형국이다. 우리나라에서도 12.3 계엄 사태 이후 극우 포퓰리즘이 노골화되고 있다. 갈수록 극성스럽다. 왜 그런가? 신영선은 한겨레> 칼럼(2025.03.24)에서 사회심리학자(세라 제이)의 말에 기대어 “최근 전 세계적으로 맹위를 떨치고 있는 극우 포퓰리즘이 불평등이라는 연료를 공급받아 작동하고 있다.”고 했다. 불평등 심화는 사회응집력과 신뢰를 약화한다. 이는 가난한 이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부유층도 언젠가 저소득층으로 추락할까 불안하게 만든다는 게다.  과연 극우 포퓰리즘이 불평등 심화와 그에 따른 불안심리 때문일까? 물론 불평등은 사회적 적대감을 조장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최근 극우 포퓰리즘이 노골적으로 그 ..

카테고리 없음 2025.03.24

봄바람

춘분 지나니 봄바람이 훈훈하다.그저께만 해도 바람이 차가웠다.춘래 불사춘(春來 不似春)이래도, 시절은 어김없다. 자연은 쉼이 없어 무상(無常)하다.갈수록 세상살이는 종잡기 어렵다.디지털 시대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타고 가려니 어지럽고 피곤하다. 내 어릴 적 봄바람은 유채꽃 피는 들판에서혹은 고향 집 앞마당에서 내 몸을 감쌌다.나른한 봄날의 추억이 아련하다. 그 봄바람 부는 세월 속에 80 노구를 이끌고 산책길에 나선다.몸은 늙어가도 봄바람은 어머니 품속처럼 포근하네. 스스로 그러한 자연(自然)에오늘도 내 몸과 맘을 위탁한다.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남은 내 노년을 보내고 싶어라.

카테고리 없음 2025.03.23

디지털 시대 살아가기

나는 해방둥이(1945)로 전형적인 농업사회에서 자랐다. 광복 이후 토지개혁에 힘입어 아버지는 일 잘하는 어머니와 힘을 합쳐 소농에서 중농으로 진입했다. 덕분에 가난한 시절 6.25 한국전쟁을 겪고도 의식주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초등학교 친구들은 후에 나를 보고 너는 나무로 치면 똑바로 자란 거랬다. 그러나 한국전쟁 후유증으로 나는 폭발물 사고로 오른손을 다쳐 손가락 없는 아이로 자랐다. 지금도 겨울이면 오른손이 시려 장갑을 끼고 다닌다. 그래도 그 손으로 글씨 쓰고, 평생 교단에서 분필 쥐고 살았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나는 평생에 농업사회-산업사회-정보사회(디지털 시대)를 다 겪었다. 전 세계적으로 나만큼 압축적으로 다양한 경험을 겪은 사람도 흔치 않을 터이다. 나는 유럽 사람들이 300년 가까이..

카테고리 없음 2025.03.22

생태적 삶의 양식

인류세에 생태적 삶의 양식이 절실해지고 있다. 하지만 산업화의 물성화에 익숙해진 현대인에게 그게 쉽지 않다. 해방둥이인 나는 중학교 다닐 때까지만 해도 시골에서 전형적인 생태적 삶을 체현해 왔다. 경제적으로는 가난한 삶이었다. 1960년대에 부산에서 고등학교 다니면서 도시 생활에 첫발을 디뎠다. 하지만 그 당시 도시 생활도 대부분 가난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나는 19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기본적으로 종래의 생태적 삶 양식을 유지했다. 70년대 중반 이후부터 나는 산업화에 따른 고도 경제성장의 혜택을 누리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나는 작은 아파트 생활을 시작했고, 대학에서 교수로서 급여도 상승하는 추세였다. 그때가 지방대학 전성기였다. 그러다가 80년대 초에 미국에서..

카테고리 없음 2025.03.21

겉 다르고 속 다르지 않는 삶(2)

약 3년 전에 ‘겉 다르고 속 다르지 않는 삶’이라는 제목으로 블로그에 글을 올린 적이 있다. 같은 제목으로 다시 쓰는 건 흔치 않다. 지난번에 올린 글의 첫 문장에서 “한 입으로 두 말하지 않는 사람은 존엄하다”고 했다. 그리고 말미에 “내면적 가치 기준에 충실한 삶을 유지하고자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일수록 겉 다르고 속 다르지 않는 사람”이랬다. 그간 생각이 달라진 것도 아니고 별로 더 보탤 말도 없다. 그럼에도 지금의 나 자신을 되짚어 보고 싶다. 아마도 겉 다르고 속 다르지 않는 삶을 체현하는 데에 부족함이 있었을 터이다.  나 자신을 속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더러는 한 입으로 두 말하거나 스스로 내면적 기준에 엄격하지 못한 게 있었을 터이다. 부끄러운 일이다. 참회하는 마음으로 다시 작심한다. ..

카테고리 없음 2025.03.19

어찌 살 건가?

비 오는 주말 오후다. 3월 중순인데 아직 좀 쌀쌀하다. 나이 들면서 기후와 날씨에 민감해진다. 이런 날은 따분하고 무료하다. 산책을 할 수 없으니 더 그런가 보다. 무료한 터에 조동일 교수 강의를 유튜브에 검색해 보았다. 요즘은 그의 신간 책이 뜸해서 이래저래 궁금하던 터였다. 그나마 근래에 녹화한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주제의 강의가 눈에 띄었다. 잘 살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는 즐겁게 살기, 떳떳하게 살기, 슬기롭게 살기를 말했다. 서로 연관이 되지만 슬기롭게 산다는 건 즐겁고 떳떳한 삶을 포함한다. 하지만 즐거운 삶에는 떳떳하고 슬기로운 삶과 거리가 먼 것도 있다. 떳떳한 삶은 경제적으로는 물론 심신의 자립과 자기다움을 유지하는 삶이다. 결국 잘 산다는 것은 질적으로 좋은 삶(to live..

카테고리 없음 2025.03.17

왜 불안하고 피곤한가?

이즘 들어 부쩍 시절이 불안하다. 자연히 몸과 마음이 피곤하다. 살기 좋은 세상이라지만 빈부격차에 따른 양극화가 심하다. 나라 간이나 나라 안에서 적대감이 늘어나니 세상이 불안하다. 게다가 정보네트워크 홍수 속에 삶이 혼란스럽다. 국내적으로는 탄핵 정국에 휘둘려 민심이 양분되고 갈등이 증폭된다. 국제적으로는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적 관세 정책이 무역 질서를 어지럽힌다. 미국 우선주의가 국제적 갈등을 부추긴다.  21세기는 다중위기 시대다. 핵전쟁 위기, 기후생태 위기, 난민과 폭동 위기, 불평등 양극화 위기, 폭주하는 정보와 불확실성 위기가 복잡하게 얽힌 시대다. 이런 지구적 위기가 한반도에 집약적으로 반영되고 있다. 나는 해방둥이로 농업사회-산업사회-정보사회로의 이행을 당대에 모두 체험했다. 게다가 홀로..

카테고리 없음 2025.03.15